지난달 세계를 놀라게 했던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두고 영국과 세계는 큰 충격을 받으며, ‘브렉쇼크’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면서 한국 금융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요. 하지만 새로운 영국 총리가 임명되면서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숨돌릴 틈도 없이,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죠. 바로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문제입니다. 한국 경제는 ‘사드 리스크’라는 파도를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요?
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뜻하는 사드(THAAD). 중∙단거리 탄도 미사일로부터 군 병력과 장비, 인구밀집지역, 핵심시설 등을 방어하는 체제입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2014년부터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 증가에 따른 한국 사드 배치를 주장해왔는데요. 최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확정되었습니다.
이에 한국의 주변 국가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측은 사드 배치가 주변 국가들의 안보 이익을 크게 훼손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 중인데요.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의 핵심무기를 가까이 두게 된 러시아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사드 배치로 인해 복잡해지는 동아시아의 외교 안보문제는 한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강렬불만, 견결반대 剛烈不滿 堅決反對> 한미 두 나라가 사드 배치를 발표하자 중국 정부가 31분 만에 발표한 성명인데요. 매우 불만스럽고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뜻이죠. 중국 측은 사드 배치에 북한이 아니라 중국의 잠수함이나 미사일의 움직임을 감시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생각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드로 시작된 정치, 외교적 문제가 경제까지 영향을 줄 조짐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중국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경우, 한국 상품의 중국시장 진출을 금지하고 한국과의 경제 왕래를 끊어야 한다는 다섯 가지 경제보복 주장을 폈습니다. 또, 웨이보 등 중국 SNS에서는 ‘#한국 제품 불매’나 ‘#한국여행 거부’ 등을 해시태그로 거는 글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중국 정부의 경제 제재도 문제지만, 이러한 민간 캠페인에 의한 반한 감정 확대 역시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만일 환구시보가 주장한 대로 중국이 경제보복을 감행한다면 그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이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경제와 중국의 관계를 살펴봐야겠죠. 12일 한국무역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은 전체의 26%. 2000년 10.7%에서 약 2배 증가한 수치이며 2위인 미국(13%)과 2배가량 차이가 납니다.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지금도 계속 상승 중이고 무역 수지면에서는 무려 5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올 1월부터 6월까지 중국 관광객(유커) 381만 명이 방한해 전체 방한 외국인 관광객 중 47%를 차지할 정도로 유커는 한국 관광 산업의 핵심 고객입니다.
또한, 국내 채권 시장에서도 ‘차이나 머니’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기준 중국 자금의 국내 채권 보유 금액은 약 17조 5,090억 원으로 투자국 중 1위입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한국 채권투자 1위였던 미국이 자리를 내준 것이죠. 더구나 한국 채권에 투자된 중국 자금은 대부분 국가기관이나 국부펀드로 회수하기 쉽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 경제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국이 경제보복이나 제재를 감행한다면 ‘브렉쇼크’를 뛰어넘는 ‘중국발 사드 리스크’가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도 중국은 일본과 한국을 상대로 무역보복을 감행한 적이 있습니다. 2000년 한국이 중국산 마늘에 관세를 높게 부과하자 한국산 휴대전화 등의 수입을 전면 중단한 것인데요.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마늘은 1,000만 달러어치 미만이었던데 반해, 중국이 막은 대중 수출의 규모는 그 50배인 5억 달러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중국의 이러한 무역 보복에 큰 타격을 받았죠. 또, 중국은 센카쿠 열도 분쟁 시에 일본 관광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거 사례 때문에, 현재 유커(중국인 관광객)를 대상으로 한 산업은 특히 긴장하고 있습니다. 유커고객이 회사 매출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화장품 업계, 여행 관련 업계는 물론이고 최근 ‘태양의 후예’ 등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K 콘텐츠 역시 악영향이 우려되는 상황인데요. 자칫하면 90만 중국팬이 모여 90억 원의 수익을 낸 EXO의 공연과 팬미팅으로 34억을 번 송중기의 모습을 더는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FTA를 체결한 한중 양국이기에 직접적인 제재가 아니더라도 업체선정, 신규 투자 등에서 보이지 않는 제재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다수입니다. 이에 반해 이러한 ‘중국발 사드 리스크’가 기우에 불과하다는 주장 또한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금융시장이 안정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중국계 자금 이탈 가능성이 낮은 데다, 이달 들어 유입된 중국 자금도 총 170억 원에 이른다는 것. 또, 사드 문제가 불거진 7, 8일 양일간에도 100억 원 이상의 차이나 머니가 한국 채권에 투자된 사실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중국계 자금 문제뿐 아니라 화장품 산업 등 한류 상품도 마찬가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의 보호무역 정책이 유지되어 한국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는 계속 증가해왔으므로 사드 문제가 새로운 악재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인데요. 중국 소비자의 성향이 크게 변하지 않는 이상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이런 현재 상황을 보면 중국발 사드 리스크가 국내 실물경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브렉쇼크로 잠시 주춤하는가 싶던 한국 경제, 사드 리스크로 다시 한 번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세계정세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인데요. 사드 배치로 인해 ’동북아 신 냉전 시대’가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급변하는 외교적 문제와 이로 인한 경제 흐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와 플랜 그리고 중장기적 대비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