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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노부부의 새집 구하기 소동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아침방송에서 “고관절을 각별히 주의”하라는 패널들의 멘트가 시선을 끕니다. 고관절은 골반과 대퇴골을 잇는 관절인데 나이가 들면 경미한 충격에도 이 고관절이 쉽게 다친다고 합니다. 고관절이 다치면 병상에 몇 개월을 누워있어야 하니, 그 사이 합병증이 와 만만히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지인의 조모께서도 집 안 계단에서 넘어져 고관절을 다쳐 꽤 고생하시다 유명을 달리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을 보면서 아침방송의 그 ‘경고’가 떠올랐습니다. 노부부 카버 부부는 지금 막 집을 내놓고 이사를 준비 중인데요. 지금 살고 있는 브루클린의 낡은 아파트는 이들 부부가 신혼 때부터 40년 동안 살아온 정든 터전인데요. 화가인 알렉스(모건 프리먼)의 작업실 창으로 보이는 멋진 풍경만 해도 선뜻 포기하기 힘든 멋진 집입니다. 그런데 왜 집을 놓았냐고요? 엘리베이터 때문입니다. 뉴욕의 오래된 아파트들은 엘리베이터들이 없습니다. 처음 카버 부부가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좋았죠. 청년 알렉스가 아내 루스(다이안 키튼)를 번쩍 들어 올려 집 안으로 들어가던 낭만적인 장면의 연출도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니까요. 하지만 숨이 헐떡거려 이제는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힘들어진 남편을 위해 아내는 결단을 내립니다. 더 늙어 힘들어지기 전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자고요. 


이참에 그 방송에서 들었던 고관절의 문제가 다가오더군요. 나이가 들면 거동이 불편해지고, 좋든 싫든 환경도 그에 맞춰 변화를 줘야 하는 상황이 오겠구나. 그런 게 노화이고, 쓸쓸함이라는 게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지요. 알렉스 역시 그 이치를 받아들이고 일단 결정을 하긴 했지만, 영 이곳을 떠나기가 싫은 눈치입니다. 마침 그때 카버 부부가 키우는 열 살 된 강아지가 병에 걸려 병원에 가는 상황이 생기는데요. 위급한 상황에서 엘리베이터가 없어 강아지를 안고 쩔쩔매며 내려오던 아내는 “이럴 때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얼마나 좋아.”라며 남편에게 핀잔을 줍니다.


 

뉴욕에서 집을 팔고 사는 일은 한국에서와는 조금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 상시로 집을 보러 오는 한국과 달리, 집을 공개하는 날을 정해놓는 ‘오픈하우스’를 마련합니다. 모월 모일 오픈하우스를 벼룩시장 같은 곳과 부동산 중개인에게 고지하고 나면, 이 집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그날 하루 방문해 집을 둘러보게 됩니다. 자유롭게 집안 곳곳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광경을 보니 마치 신축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보는 듯 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낯선 사람들이 집안을 점령해 이것저것 살펴보는 것에 카버 부부는 꽤나 놀란 듯 한 눈치입니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노부부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카버 부부가 집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는 그때, 뉴욕은 테러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요. 카버 부부의 집 앞에 있는 브루클린 다리에서 누군가 대형 유조차를 세워놓고 도망가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지요. 유조차에 폭탄이 설치된 게 아닐까 하는데서 오는 테러에 대한 공포, 운전자의 신분을 추적하는 뉴스로 연일 뉴욕 시내가 시끄러운데요. 바로 ‘제2의 911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공포가 뉴욕시에 확산되며 혼란이 가중되는 것이지요. 잘 아시겠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부의 집값도 원래 시세보다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태지요. 이 와중에도 이사 가는 일이 영 내키지 않은 알렉스는, 테러에 대한 공포로 이 지역이 인기가 없어져 사람들이 집을 보러 오지 않는 게 아닐까 내심 기대를 하고 있다니, 참 재밌는 일이죠.


알렉스의 바람과 달리, 집을 구하는 사람들은 꽤 많은데요. 이 중에서 인상적인 방문자가 있습니다. 집 보러 온 엄마를 따라온 작은 소녀인데요. 북적거리는 거실이나 침실 대신 알렉스의 화실에 들어온 소녀는 알렉스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묻습니다. “집을 왜 파세요?” “개 키우세요?” “개는 무슨 병에 걸렸어요.” 이런 사소한 질문들을 던지는데 그 질문에 답하면서 알렉스는 하나둘 자신이 아내와 가꾸어온 추억들을 환기시켜 나갑니다. 참전 군인에서 그림 그리는 화가가 되고, 누드모델로 학비를 벌던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또 흑인인 자신과 백인인 아내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시선도 받았던 날들이 지났습니다. 기쁜 일도 힘든 일도 함께 했던 시간들이 부부 사이에 축적된 것이지요. 



마침 부부가 집 문제로 골치를 썩는 동안, 강아지는 디스크 파열 진단을 받고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수술비만 1천 달러에 달하는데다 의사는 수술을 해도 정상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보장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겁을 주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강아지는 아이가 없는 부부를 위해 알렉스가 오래전 아내에게 선물했던 소중한 존재였고, 섣불리 포기할 수 없는 자신들의 가족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부부에게는 열 살 된 늙은 강아지가 곧 보호해 줘야 할 존재이자, 나이 든 자신들의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강아지의 수술은 잘 끝났지만 걷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꼭 우리 같네. 어디로 갈지 모르고 다리는 못 움직이고.”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알렉스는 “당신 닮았으니 곧 걸을 거야”라고 낙관을 합니다.


앞서 집구하는 문제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고 말했지요. 그렇게 오픈하우스에서 집을 보고 간 사람들은 일종의 입찰을 하게 되는데요.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른 사람이 집의 주인이 되는 구조입니다. 마치 입시 원서를 넣듯 눈치작전을 펼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집주인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딱한 사정을 말하고 꼭 집을 사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부부는 자신이 집을 내어 놓고 겪은 그 과정을, 새로 이사 가기 위해 점찍어둔 집에 가서 집을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또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연 이 부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쾌적한 새 집으로 이사 가게 되었을까요? 아, 참 그전에 유조선을 세워 놓고 달아난 그 테러범의 존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가지 희망은 수술 후 못 움직이던 강아지는 기력을 회복하고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쇼생크 탈출>의 모건 프리먼과 <애니 홀>의 다이안 키튼이 카버 부부로 출연을 하는데요. 묵직한 울림을 주는 연륜 있는 연기 덕분에 이 노부부가 겪는 고충이 한층 사실감 있게 전해집니다. 비록 늙어가지만, 서로 의지할 곳이 있는 덕분에 부부는 집구하기 소동을 현명하게 잘 극복해 나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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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