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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세상을 바꾼 열혈 기자들의 팀플레이 <스포트라이트>


1970년대 미국 보스턴, 카톨릭 교회에서 수십 년에 걸쳐 자행된 아동 성추행 스캔들이 발생했습니다. 보스턴 지역에만 줄잡아 90여 명의 사제가 가해자로 가담한 대대적인 사건이었는데요. 성 추행 피해자들은 대부분 피해 당시 15세 정도의 어린 소년들이었습니다. 사제들은 가해를 해도 뒤탈이 없다는 이유로 저소득 가정, 편모 부모, 이혼 가정의 자식들을 타깃으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훗날 어른이 된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제의 요구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던 건 가해자가 성직자라는 이유가 컸다고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일을 하는 곳’이었지요. 이들에게 따뜻한 안식처이자 믿음을 주었던 곳이었고, 그곳의 사제들에게 반항하는 건 금기시된 일이었습니다. 피해 어린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믿었던 신앙을 잃게 되고, 술과 약으로 버티거나 심한 경우 자살을 택한 피해자도 있었습니다.



<출처: 네이버cast http://tvcast.naver.com/v/737909>

 

사태의 심각성은 이 엄청난 사건이 무려 30여 년 동안, 진실을 은폐하려는 교회의 비호 아래 철저하게 숨겨져 왔다는 사실인데요.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에서 심층취재(spotlight)를 전문적으로 하는 부서인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은 근 1년의 시간을 거쳐, 이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취재, 폭로하고 나섭니다. 기사를 통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카톨릭교회의 행태가 만천하에 밝혀졌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요.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바로 이 실화를 바탕으로 진실을 밝히려는 스포트라이트 팀의 고군분투를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긴 시간 동안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이 빛을 보게 된 경위는 무엇이었을까요. 보스턴 글로브에 새로 부임한 신임 편집국장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은 부임 즉시 이 사건의 집중 취재를 지시합니다. 기자들은 이 요구에 선뜻 응하지 못하는데요. 보스턴은 신도가 많은 도시인데다, 글로브지의 구독자 중 53%가 카톨릭 신자입니다. 이런 곳에서 카톨릭 교구의 비리를 수사한다고 나섰다가는 자칫 반발만 불러일으키기 십상인데요. 아동 성추행의 경우 공소시효가 고작 3년, 잡혀도 벌금 2만 불 정도로 선처를 받는 가벼운 처벌이 당시 규정이었다고 합니다. 



팀장 월터 로비 로빈슨(마이클 키튼)을 중심으로 마이클 레젠데스(마크 러팔로), 사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 매트 캐롤(브라이언 다아시 제임스)으로 총 네 명으로 구성된 스포트라이트 팀은 이 같은 부당한 상황을 알게 되면서, 점차 취재에 뛰어듭니다. 그냥 눈 질끈 감고 모른 척하는 건 결국 성 학대를 방조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그러니 명명백백히 밝혀 다시는 이 같은 추악한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 기자 정신이 앞선 것이지요. 일단 시작은 했지만 취재 과정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미 해당 사건이 일어난 지 한참 뒤라 사건 자료도 미비한 상태. 당시를 잊고자 하는 피해자들에게 다시 증언을 받아야 하며, 진실을 덮으려는 카톨릭 교구청의 방해에 맞서야 합니다. 취재 기간 동안 이들에게 중요한 1순위는 개인도 가족도 아닌 바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있었습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이 영화 어디에도 아동 성추행이라는 사건을 자극적으로 소화하는 장면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경우, 아이들이 성추행을 당하는 장면을 연출한다면 사건의 심각성을 도드라지게 하는 효과를 줄 수도 있는데요. 토마스 맥카시 감독은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 철저하게 타협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줍니다. 


사건의 전말은 오직 취재 당시 어른이 된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과 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기자들의 인터뷰로만 진행이 되는데요. 당시를 회상하고 증언하는 피해자들의 표정과,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끄집어내고 기록해야 하는 기자 간의 팽팽한 긴장이 사건의 심각성을 전달해 줍니다. 영화 속 스포트라이트 팀이 견지하는 원칙 역시 토마스 맥카시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 영화를 만들고자 적용한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이 사건을 카톨릭 교회 전체의 시스템에 대한 점검을 할 수 있는데 초점을 두고 기사를 준비하는데요. 만약 이 사건을 어느 한 사제의 일탈로 포장해, 대서특필하고 그를 처벌하고 특종을 터뜨리는데 주력하는 것과는 지극히 다른 접근입니다. 어설프게 자극적인 소재로 접근해 사건의 핵심은 건드리지도 못한 채 한낱 기삿거리로 만 소비되는 건 이들 취재팀이 가장 피하고자 했던 결과입니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취재를 하던 2000년대 초반은 온라인 매체의 급성장으로 지면 매체들이 경영상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을 때라는 점을 한번 짚어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새 편집국장은 부임과 동시에 특종이나 이슈몰이로 판매량을 늘리는 대신, 기자들에게 언론이 매진해야 할 정도의 길을 제시하고 나섭니다. 스포트라이트 팀의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어떤 꼼수도 부리지 않고, 외압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건 가슴 뭉클한 경험입니다. 꾸미지 않은 허름한 옷차림, 취재에만 매진하는 그들은,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도 여전히 정의를 실현하고자 묵묵히 노력하는 흔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언론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독립적이어야 한다” “이런 기사가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다”라며 원칙을 지키려는 영화 속 언론인들의 일갈은,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비판받는 지금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스포트라이트’팀은 집요한 취재를 바탕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힌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미국 최고의 언론 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하였고, 이들이 제기한 문제는 미국 전역으로 파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2011년, 우리에게 장애인학교 교직원의 장애인 성폭행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 이후 아동ㆍ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도가니법이 시행되었던 걸 떠올려 봅니다. 가해자와 그를 비호하는 자들이 넘치는 추악하고 어두운 세상에도, 이를 명명백백 밝힐 환한 조명, 스포트라이트(spotlight)가 있다는 건, 여전히 이 세상에 희망을 걸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트라이트>는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을 수상하며 호평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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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