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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영화기자가 들려주는 영화 속 보험이야기 <위아영>


최근 들어 스스로에게 ‘꼰대 지수’ 적신호를 감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에서건 공공장소에서건 후배들의 사소한 행동들 하나하나에 “내가 저 나이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못마땅한 기분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더군요. 같은 동료끼리였다면 그저 ‘성격 나쁘네’하고 넘어갔을 일인데, 직급이 올라가고 직책도 바뀌고, 그저 그렇게 넘기기에는 애매한 문제가 되더군요. 이런 저의 고민에 또래 동료가 경고성 멘트를 날려옵니다. “워워~ 그러다 우리도 금방 꼰대 소리 들을걸.” 잘해보자고 한 일에 이런 반응이라니 억울한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내 마음마따나 후배들이 나를 ‘동료’로 보기나 할까 의심마저 들기 시작하더군요. 얼마 전만 해도 제 감성사전에는 없었던 ‘상사’ ‘선배’ ‘나이’ 같은 단어들을 죽 나열해봅니다. 그리고는 연달아 내가 막내이던 옛날, 선배들에게 느꼈던 감정들을 곱씹어 봅니다. 선배라는 ‘무기’를 들이대며 비합리적인 요구를 일삼던 K 선배에 대해 동기들끼리 불평을 토로했던 순간이 떠오르더군요. 어느 사이 제가 K 선배의 나이가 되어있었습니다. 이 일을 한지도 십수 년,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던 그때로부터 참 멀리도 왔다 싶네요.


노아 바움백 감독의 <위아영>을 본 것은, 적어도 그렇게는 되지 말자/ 나이에 함몰되지 말고 삶의 균형을 지키자 / 열 살 넘게 세대 차이 나는 막내 기자들과도 동등한 감각과 사고를 유지하며 함께 이 생을 즐겨 보자 / 뭐 이런 혼자만의 다짐을 하던 때였지요. 


<위아영>은 뉴욕에 사는, 흔히 ‘뉴요커’라 불리는 40대 중년 부부가 20대 커플을 만나며 빚는 해프닝인데요. 주인공 40대 부부의 직업은 영화인입니다. 조쉬(벤 스틸러)는 꽤 성공한 다큐멘터리 감독이고 아내 코넬리아(나오미 와츠)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이름이 높습니다. 코넬리아의 아버지가 다큐멘터리계의 대부로 불리는 거물이며 딸은 그런 아버지의 작품에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알려드려야겠군요. 좋은 집, 명성, 문화적 소양까지 갖춘 안정적이고 화목한 40대 뉴요커 부부.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데요. 이들 부부에게도 고민이 있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임신 및 출산이 없다는 것과 8년째 가닥이 풀리지 않아 늦어지고 있는 조쉬의 신작 소식입니다. 핵심은 이 사안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그리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친구들은 정도 차이야 있지만, 직장과 집에서 또 다른 문제들을 겪고 있으니까요. 고민이긴 한데 생존의 위협은 없다는 점에서 아마 권태에 가깝다 싶은데요.



문제는 이들이 그들의 ‘영역’을 벗어난 젊은 커플을 만나면서 불거집니다. 만남 자체는 아주 평범하게 시작되지요. 20대 커플인 제이미(애덤 드라이버)와 다비(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조쉬의 다큐멘터리 강의를 듣고, 그에게 ‘순수한’ 관심을 표명해 이뤄지는데요. “평소 존경해왔다”는 제이미의 팬심에 조쉬는 쉽게 마음을 열죠. 제이미 커플은 젊음의 거리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힙합 패션과 모임을 즐기며,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소위 ‘힙스터’라 불리는 이들입니다. 대중이 따라 하는 유행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이들 힙스터들은 인디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가지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는 무리들이죠.


물론 ‘그들의 방식’도 하나의 트렌드니, 힙스터 역시 유행의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어쨌든 스스로는 지적인 우월감을 느끼는 부류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힙스터의 삶을 사는 제이미는 무명 다큐멘터리 감독이며 여자친구 다비는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판매합니다. 조쉬 커플만큼 돈과 명성은 없지만 이들은 아직 젊죠. 마침 권태기에 접어들던 조쉬 커플에게 ‘뭐든 할 수 있다’는 태도로 덤비는 제이미 커플은 매력적이고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옵니다. 현실적 고민에 잠겨있는 또래 친구들을 멀리한 채 조쉬 커플은 제이미 커플에게 전적으로 자신의 여가를 맡기는데요. 잘 갖추어 입은 고급스러운 차림 대신 ‘젊은 커플처럼’ 낡은 빈티지 의상이나 헐렁한 힙합 패션을 소화하며, 평소 다니는 VIP 헬스클럽 대신 '그들처럼’ 격렬한 힙합 댄스를 배우러 다닙니다. 동양 사상이 섞인 이상한 영적 체험 현장마저 ‘그들도 하니’ 의심 없이 따라나서죠.



젊은 사고, 젊은 행동, 젊은 취향을 놓지 않음으로써 조쉬 커플은 나이의 물리적 시간과 상관없이 여전히 젊은듯한 안도감을 얻습니다. 또래 친구들은 더 이상 새로운 걸 접하지 않고 스스로를 방치하지만, 자신은 그들과 달리 여전히 젊다는 상대적 만족감도 얻죠. 그런데 조쉬 커플의 이러한 ‘젊음의 카테고리’ 합류를 지켜보는 마음은 영 편치가 않습니다. 뼛속까지 힙스터가 아닌 40대 중년에게 힙스터 라이프스타일은 ‘놀이’가 아닌 애써 노력해야 하는 ‘체험’에 가깝거든요. 제이미와 함께 자전거를 타던 조쉬가 근육경련을 일으켜 도중에 병원을 가는 장면은 이들의 차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무척 우스우면서도 씁쓸한 현실이죠. 그렇게 애쓰는 가운데, 함께 먹는 밥값은 늘 자기가 계산하는 조쉬 로서는 ‘동등’하다는 기분도 점점 희박해져 가고요. 즐거워야 할 만남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결국 불편해져만 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쉬에게는 ‘요즘 젊은 애들은’이라는 일말의 위안거리가 있습니다. 일에 있어서는 자신이 한참 선배거든요.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도움의 손길도 충고도 마다하는 조쉬와 달리, 제이미는 발 빠르게 도움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만든 작품이 호평까지 얻게 됩니다. 후배라고 낮춰보던 제이미지만 조쉬보다 처세에는 더 능했던 것지요.



조쉬와 제이미의 관계에 파국이란 처음부터 예상되었던 것일까요? 40대와 20대라는 간극, 세대 차이는 절대로 좁힐 수 없는 걸까요. 나이 든다는 것은 이렇게 뱁새가 황새걸음을 좇듯 힘겹게 따라잡으려고 해도 젊음의 사고방식과 점점 멀어지는 쓸쓸한 퇴행을 의미하는 것 일까요? 이 영화가 참 재미있어지는 건 이런 질문들이 도출되는 순간이지 싶습니다. 40대의 입장에서 보면 제이미의 행동은 ‘어린 것’이 뒤통수를 친 것처럼 분개할 일이 되지만, 20대의 입장에서 보면 한참 이야기가 달라지죠. 기성세대가 이미 이루어놓은 어떤 성취에 다가가기 위한 진취적인 자세나 노력이 없이는 기회의 획득 자체가 불가능하거든요. 제이미의 행동은 20대가 갖춰야 할 미덕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조쉬는 제이미에게 불같이 화를 내지만, 결국 아내를 향해 “제이미는 악마가 아니야. 젊은 것뿐이야.”라며 곧 그와의 불화를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젊은 측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제이미를 지켜보던 여자친구 다비는 조쉬에게 말하죠. “우린 어떻게 늙어갈지 늘 궁금했는데, 지금 보니까 남들과 똑같네요.”



올해 마흔여섯 살, 뉴욕에서 영화를 만드는 노아 바움백 감독이야말로 실제로 이 두 커플의 삶을 겪고 또 보아왔을 텐데요. 그가 연출의 변을 통해 “나이를 먹는 것과 진짜 어른이 되는 건 다른 일"이라고 남긴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나이 듦이 성숙함을 보장해주지도, 젊은 것이 미숙함을 뜻하는 것도 아니겠지요. 우리 모두 각자 인생의 첫 20대를, 첫 40대를, 첫 60대를 ‘처음으로’ 살아보는 것뿐이니까요. 그러니 저도 제 나이의 초보로서, 또 다른 초보의 나이를 사는 젊은 후배들에게 더 세심한 대화법을 강구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여러분은 지금, 조쉬와 제이미 둘 중 어느 쪽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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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