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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영화기자가 들려주는 영화 속 보험 이야기<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한동안 남의 집에 숨어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괴담처럼 떠돌았었는데요. 주인이 나간 사이 그 집에 몰래 들어가 음식을 축내고, 침대를 쓰는 등 주인처럼 행세를 하는 것이지요. 숨어살던 이들은 발각된 후, ‘경제난으로 살 곳이 없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변명을 했다고 하는데요. 주로 뉴욕이나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 빈번히 발생한 이 사건은 도시빈민의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아 보입니다. 


미니봉고차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지소(이레)도 이들 도시 빈민의 처지와 연결되는데요. 원래 피자집을 운영하던 아빠가 피자 배달에 사용하던 이 봉고차는 사업에 실패한 아빠가 떠난 지금 지소네 가족, 엄마(강혜정)와 어린 남동생 지석(홍은택)이 사는 입니다. 봉고차의 뒷문을 열면 빨랫감들이 걸려있고, 물건을 실어 나르는 뒷자석은 지소와 동생이 쓰는 방처럼 기능합니다. 엄마는 운전석을 뒤로 제쳐 그걸 침대삼아 살고 있지요. 

 

  


  

집나간 아빠는 언제 돌아오고, 엄마는 언제 버젓한 직장을 구해서 이 생활 벗어날 수 있을까? 지소는 친구들에게 행여나 자신의 처지를 들킬까봐 전전긍긍합니다. 곧 돌아올 생일파티엔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멋진 생일 파티도 열어야 하는데, 엄마는 그런 지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가뜩이나 단짝 친구 채랑(이지원)에게 이 비루한 생활마저 들켜버린 상황, 다행히 친구는 지소의 입장을 이해하고 조력자가 되어줍니다. 


그러던 중 동산 앞을 지나던 아이 ‘평당 500만원’짜리 저택의 전단지발견합니다. 아이의 눈으로 이 전단지를 해석하자면, 재밌게도 ‘평당이라는 지역에 있는 500만 원짜리 집,’이 됩니다. 지소의 묘안은 이렇습니다. 부잣집 강아지납치현상금으로 500만원을 받고, 그 돈으로 평당의 500만 원짜리 을 사면 지긋지긋한 봉고차 트럭끝날 수 있겠다는 것이지요. 강아지는 입금만 되면 곧 돌려주고 말입니다. 

 

 


  

이것이 어린아이들이 겁도 없이 강아지 납치에 나선 전말입니다. 납치 대상은 엄마가 쫓겨나기 전 일하던 레스토랑 마르셀의 주인인 노부인(김혜자)의 강아지 윌리(개리)입니다. 자신이 죽고 나면 유산을 윌리에게 물려줄 정도로 노부인이 아끼는 강아지라는 점에서 윌리는 완벽한 대상처럼 보입니다. 범행에는 단짝 친구 채랑, 그리고 동생이 가세합니다. 케이퍼무비 <오션스 일레븐>이나 <도둑들>처럼 전략과 전술을 치밀하게 세운 멋진 어린 도둑들의 활약이 시작되는데요. 윌리의 하루 일과를 파악하는 것부터, 매일 들르는 강아지 병원에서의 동선 파악, 윌리를 유인한 후 어디에 둘 것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치밀한 계획이 수반되는데요. 특히 이 아이들의 비밀작전에 노숙자인 대포(최민식)가 가세하면서 사태는 위험천만 일로를 내달리게 됩니다. 


허황된 소동극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보면 지소의 행동이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지소 집구하기단순히 어린 아이의 투정이 아니라 곤궁한 생활되어 있으며, 그 한편에는 아빠를 기다리는 소녀의 아픔도 내재하고 있습니다. 비록 평당 땅값을 ‘분당 옆 평당’이라고 해석하는 아직 뭣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른들이 사는 세상만큼이나 녹록하지 않다는 게 핵심이지요. 처음 500만원의 현상금이 걸린 강아지의 주인에게 전화를 건 채랑은 “500만원 다 주시는거 맞죠? 세금 떼고 그러시는 거 아니죠?”하고 어른스런 질문을 던집니다. ‘돈’의 개념이 희박한데서 오는 재미도 보이는데요. 


지소와 같은 반 아이는 “집 한 채를 100만원 주면 살수 있냐?”는 지소의 질문에 핀잔을 주며 “500만원은 줘야 살 수 있다”고 잘난척하는 식이지요. 김성호 감독은 어린 아이들의 시선을 가감 없는 그들의 대사를 활용해 이렇게 코믹한 장면으로 드러내는데요. 이런 어린이들의 행동에 웃다가도 이내 씁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야 말로 이 영화가 숨겨둔 진짜 이야기이지요. 

 

 


 

특히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은 바로 엄마보다 어른 같은 지소, 어린 지소보다 더 철없는 엄마대비에서 오는 티격태격 다툼인데요. 친구의 도움으로 취직한 레스토랑에서는 온갖 실수를 저질러 쫓겨나고, 이모한테 부탁하자는 지소의 권유도 마다하고 사는 엄마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학교 가는 지소에게 엄마는 지소와 엄마가 싸우고 난 후 화가 난 지소가 차에서 내리면 엄마가 이렇게 핀잔을 줍니다. “빨리 안 들어와!” 빨리 타라는 게 아니라, 봉고차그냥 내 집이려거니 하는 엄마의 모습이 웃기면서도 짠한데요. 겉으로는 철없어 보이지만, 엄마에겐 이 봉고차가 떠난 아빠가 돌아 올거라는 기다림을 실현시켜주는 장소라는 점에서 짠한 생각이 듭니다. 


두 모녀의 갈등이 극화되는 순간 지소는 “아빠 대신 차라리 엄마가 나갔으면 이렇게 까진 안됐을 텐데.”하고 가족끼리는 해서는 안될 아픈 말로 엄마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하는데요. 레스토랑의 노부인 역시, 오래전 집나간 아들과 겪었던 불화로 고통을 겪고 있단 점에서 지소가 가진 아픔을 나누어 가지는 존재입니다. 흔히 성장영화에 등장하는 미스터리한 존재인 노숙자 대포 역시, 지금은 집을 나와서 떠돌고 있지만 그를 기다리는 자식을 둔 가장이라는 점에서 지소의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요즘 뉴스에서는 경제 난에 허덕이다 가족이 동반자살을 하고, 또 그걸 타계해보고자 보험사기를 계획하는 이들의 믿기 힘든 사건이 끊임없이 보도되는데요. 그만큼 우리사회고통을 받는 이들이 많은 시기입니다. 지소가 힘든 성장통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만나는 어른들은, 바로 이렇게 어려운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지소의 가족이 언젠가 돌아올 아빠를 기다리는 것처럼, 많이 힘들더라도 서로의지가 되어 위기극복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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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