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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흥부전으로 풀어보는 인생 만사



'흥부전'은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전래동화지요.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흥부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 주면서 받은 박씨로 부자가 되고, 심술궂은 놀부는 그것을 셈을 내어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그래서 받은 박씨로 있는 재산을 다 빼앗긴다는 권선징악형 동화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잘 들여다 보면, 현대인에게 경제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상속권, 연금, 재테크 방식에 관련된 교훈을 몇 가지 얻을 수 있답니다. 그럼, 흥부전으로 알아보는 인생만사, 인생 속에 꼭 챙겨야 할 경제 상식을 지금부터 알아볼까요? 




고령화 시대 놀부의 장자상속의 정당한가? 


오장육부가 아닌 오장칠부 ‘심술보’를 하나 더 가지고 태어난 놀부는 아버지 연생원이 죽자 물려받은 재산을 혼자 다 차지하고 흥부 가족을 쫓아냅니다. 놀부가 받은 재산으로 가늠해 볼 때 연생원은 분명 그 지역에서는 내로라하는 부농지주였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하루아침에 부농의 차남에서 알거지로 쫓겨나게 된 흥부는 건넛산 언덕 밑에 움을 파고 수숫대로 집을 짓고 기거합니다. 말 그대로 ‘흥부가 기가 막힐 노릇’이나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죠.


이런 기가 막힌 일이 현재에도 가능할까요? 조선후기 당시에는 주자 성리학 이념이 뿌리깊게 자리잡아 장자중심의 상속이 당연시 되었고,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큰 전란을 겪으면서 혈족의식은 더 공고해졌죠. 특히, 제사를 모시는 위치에 있는 장자는 자연스럽게 가계의 중심이 되면서, 상속 또한 장자중심으로 굳어졌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유산상속 관행은 광복 이후까지도 이어졌는데요. 1960년 당시 민법에 의하면 배우자와 장남, 장남이 아닌 아들, 결혼하지 않은 딸, 결혼한 딸의 법정 분배비율은 0.5: 1.5: 1: 0.5: 0.25로 호주를 승계하는 장남에게 가장 많은 유산이 돌아갔습니다. 이후 첫 번째 법 개정에서 배우자 지분이 증가해 배우자, 장남, 장남이 아닌 아들, 결혼하지 않은 딸, 결혼한 딸의 상속비율이 1.5: 1.5: 1: 0.5: 0.25로 조정됐고요. 현행 제도인 두 번째 법개정에서는 호주제도 변화가 반영되어 장남에 대한 가산 규정이 사라지고, 딸도 아들과 같은 비율을 받도록 되어 배우자, 장남, 장남이 아닌 아들, 결혼하지 않은 딸, 결혼한 딸의 상속비율이 1.5:  1:  1:  1:  1로 변경된 것이죠.


법무부는 올 초1990년 이후 24년 만에 배우자의 상속지분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속제도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상속법 개정안이 확정되면 각각의 상속 지분은 어떻게 변할까요? 현행법상 배우자와 자녀의 상속재산 비율은 1.5 대 1입니다. 하지만 이후엔 배우자가 우선 50%를 받고 나머지 50%를 기존방식으로 나누게 됩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와 자녀 2명이 있을 경우 현재는 배우자가 42%, 자녀가 각각 28%를 받았는데, 앞으로는 배우자가 50%를 먼저 선취하고 나머지를 상속분에 따라 1.5대 1대 1로 나눠 배우자 71%, 자녀들이 각각 14%씩 받게 되는 것이죠. 배우자 입장에서는 개정안이 확정되면 기존대비 약 29%의 상속분이 더 인정되는 셈입니다.


이번 법개정은 부부가 함께 노력해 재산을 형성한 만큼 배우자에게 그 몫을 우선 돌려준다는 의미와 더불어 고령화 추세에 따라 평균수명은 점차 늘어나는데, 자녀부양은 기대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반영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와 부모봉양에 대한 인식변화 등 시대 상황에 따라 상속제도의 틀도 함께 변하고 있죠. 





흥부는 준비 없이 맞이한 정년의 초상 


굶주린 사람에게 밥 나눠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 벗어주는 흥부는 분명 심성이 어질고 착한 사람일 거예요. 놀부에게 쫓겨나던 날도 남이 알면 형의 흉만 더 드러날까 하여 원망 없이 잠자코 집을 나온 흥부지요. 하지만 흥부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데다 먹여 살려야 할 자식을 대책 없이 줄줄이 낳은 계획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이사이 양반입네, 가부장입네 하며 먹히지도 않는 허세를 부리는 사람으로 희화화 되기도 했고요. 


판본마다 다르지만 그는 열 둘에서 서른 명에 이르는 자식을 둔 것으로 묘사되는데요. 당시는 해도 자식이 재산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을 시대였죠. 하지만 이는 기를 수 있는 능력과 형편이 될 때나 해당되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흥부전에서도 아비의 처지는 생각도 않는 철 없는 흥부 자식들의 대목이 나오는데요. 온갖 구하기 어려운 음식을 찾는가 하면, 이 와중에 장가 보내달라는 녀석도 있죠. 이런 상황에서 기술도, 능력도, 그렇다고 변변한 인맥도 없던 흥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돈을 받고 남의 매를 대신 맞아주는 매품팔이 정도였습니다. 말 그대로 기술이 없으니 급한 김에 몸으로 때우는 식인 거죠.


작년 5월 개정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존 권고사항이던 정년은 2016년부터 순차적으로 60세 의무조항으로 바뀌게 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주된 직장에서 60세를 꼬박 다 채우고 은퇴하기란 사실상 쉽지가 않죠. 그래서인지 현역시절 제 2의 인생을 부지런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각종 자격증 취득에 시간을 투자하는 직장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고요.


이야기 속 흥부는 착한 심성 하나만으로 운 좋게도 복을 받아 잘 살게 되지만, 대한민국 현실에서 흥부처럼 대책 없이 살다간 노후엔 생활자금마저 없어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흥부의 '박씨' 같은 은퇴 후 '연금'


부러진 다리를 명주실로 곱게 감아 보냈던 제비가 이듬해 물어온 ‘박씨’를 심었더니 크게 자란 박에서 금은보화가 넘치도록 쏟아져 나와 흥부는 하루 아침에 떼부자가 됩니다. 흥부에게 말 그대로 ‘대박’이 난 것이죠.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가 현실에서도 가능할까요?’ 흔히 인생역전으로 여겨지는 ‘로또’는 45개의 공 중에 순서에 상관 없이 여섯 개를 뽑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1등의 당첨확률은 수학적으로 8,145,060분의 1이라고 합니다. 결국 누군가는 1등을 하겠지만, 내가 1등이 될 확률은 말 그대로 8백만 분의 1이죠.


그렇다면 현실에서 미래의 내 노후를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다름아닌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차곡차곡 쌓은 3층연금입니다. 국민연금에 가입함으로써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으며,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입하는 퇴직연금을 통해 평균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으며, 적절한 개인연금을 선택해 보다 풍족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외국과 비교할 때 늘 은퇴준비가 부족하다고들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급속한 고령화도 문제지만 노후준비가 안 된 이유를 냉정히 따져보면 정부나 금융기관, 개인 모두의 책임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인구대체 수준(2.1명)으로 감소한 1980년대 중반 일부에서 인구 억제정책의 존폐논쟁이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10여년이 지난 1996년에 이르러서야 산아제한 정책을 폐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저출산ㆍ고령화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시대역행적인 인구억제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군요. 


금융산업측면에서도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된 이후, 1994년 개인연금이 도입되고, 2005년 퇴직연금제도가 시작했으니 한 개인 입장에서 보면 다층보장체계 안에서 사적연금제도를 갖춘 것 자체가 상당히 최근의 일입니다. 은퇴 이후 생애전반에 대한 자산관리 개념을 도입한 PB서비스가 90년대 초반 도입되기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VIP만을 대상으로 제한적인 영업을 했었죠. 따라서 은퇴와 노후준비를 금융권에서 본격적으로 마케팅 하기 시작한 것은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2005년 12월 이후로 보는 것이 맞을 거예요. 


보험사 중심으로 영업이 이뤄지던 퇴직보험제도가 폐지되고, 퇴직연금제도 도입과 함께 은행과 증권사로까지 사업자 범위가 확대되면서 당시 블루오션으로 여겨지던 퇴직연금시장 선점을 위한 업권간 경쟁이 본격화 됐습니다. 특히 ‘퇴직금’에서 ‘퇴직연금제도’로의 전환을 마케팅하는 과정에서 연금의 필요성과 노후와 은퇴준비에 대한 니즈환기가 총력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이죠. 


국내 연금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만큼, 일부 공무원을 제외하면 주변에 3층연금만으로 풍족한 노후를 즐기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길어질 노후를 감안하면 연금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 될 것이 확실하죠. 따라서 한 번에 터지는  ‘대박’을 기대하기란 어렵지만, 3층 보장체계를 완성시켜주는 연금은 개인의 노후에 있어 소중한 ‘박씨’와 다름 없을 거예요.




누군가의 대박이 나에겐 쪽박? 


놀부가 박을 탈 때마다 그 속에서는 기괴한 무당과 중, 장군과 왈짜들이 차례로 나와 놀부를 매질하고 재산을 빼앗습니다. 이 부분은 흥부전 후반 상당량을 차지하는 대목으로 매우 해학적으로 표현돼 이야기 최고의 재미를 주는 대목이기도 하죠.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 한가지. ‘놀부는 왜 계속해서 박을 탔을까요?’ 놀부는 다음 번 박에서는 반드시 흥부처럼 금은보화가 나올 것이란 헛된 기대를 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욕심에 눈 먼 놀부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지꼴이 될 때가지 박 타기를 계속하는데요. 결국 놀부가 탄 마지막 박에서는 누런 똥물이 터져 나와 온 집안을 덮고 맙니다.


사실 놀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나름 치밀하게 동생의 재테크(?) 성공방정식을 따랐는데, 놀부만 대박이 아닌 쪽박을 찼으니 억울할 만도 하지요. 그래서 놀부의 경우를 보고 남이 성공한 재테크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요새와 같은 저금리 시기에 100%원금 보장에 고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달콤한 조건으로 투자를 유인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궁해질수록 귀가 얇아지고 남에 말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죠. 우스갯소리로 ‘사기 당할 때가 제일 기분 좋은 때’란 말이 있는데, 이는 ‘기분 좋게 홀딱 넘어갈만한 솔깃한 얘기를 들었으니 속아 넘어가지 않았겠냐’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수도권과 광역시 거주 만 24~65세 2,53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5%가 금융사기와 관련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해요. 금융사기는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점, 명심하세요. 


특히, 최근에는 은퇴자만을 타깃으로 하는 전문 사기범들이 기승을 부린다고 하니 주의해야 해요. 고령의 은퇴자들은 상대적으로 퇴직금과 같은 현금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금융시장 변화에는 어두워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미국 투자자교육재단(FINRA)은 금융사기피해를 입기 가장 쉬운 사람유형을 ‘50대 후반 기혼자, 자신의 판단과 금융지식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낙관적인 성격의 소유자, 최근에 건강 또는 금융상 어려움을 겪은 사람, 새로운 생각이나 판매선전에 귀가 솔깃한 사람’으로 제시하고 있으니 참고해 하세요.




흥부는 노후에 행복했을까? 


흥부전 이야기는 흥부가 거지꼴로 찾아온 놀부를 따뜻하게 받아주고, 놀부의 사과로 형제가 화해하며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렇다면 흥부는 어떠한 노후를 보냈을까요?’  아마도 그는 슬하의 많은 자식들의 지극한 봉양을 받게 될 테니, 조선팔도 누구 부럽지 않게 행복한 여생을 보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욕심이 없는 착한 흥부가 한 번의 대박으로 우애도 되찾고, 여생을 행복하게 마감하지만, 현대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동화’라는 생각이 씁쓸하게 와닿는데요. 동화의 교훈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사회, 경제 상황과 대조해 보고, 현명한 교훈을 찾는 것이 어른이 ‘동화’를 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치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