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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바쁜 일상 속 나를 키우는 휴식 템플스테이, 백담사를 가다


템플스테이란 한국불교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산사에서 수행자의 일상을 경험하는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입니다. 템플스테이(templestay)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한국의 전통불교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상설화됨과 동시에 한국의 대표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등산, 골프, 헬스, 승마 등의 다양한 운동을 하고 건강식품을 꾸준히 먹으며 육체적 건강을 위한 노력은 열심이었지만 마음공부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에 정신수양의 필요성을 느끼고 휴가 때 템플스테이를 실행에 옮겨 보았습니다.

 


백담사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다양했습니다. 불교문화체험형(참회 명상, 다도, 운력), 생태체험형(숲 해설, 별을 헤고 달을 보는 밤), 전통문화체험형(돌탑 쌓기, 연꽃 등과 양초 만들기), 수행형(108배, 좌선, 행선, 명상) 등이 있었고 이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어 선택의 폭이 넓었습니다.



최적의 템플스테이 장소, 백담사


백담사는 서기 647년 신라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로, 『님의 침묵』이란 시로 널리 알려진 만해 한용운 선사가 출가한 사찰이자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 본거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약 5,700여 개에 이르는 전국의 사찰 중에 굳이 백담사를 선택한 이유는 첫째, 설악산의 빼어난 산세와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백담계곡, 수렴동계곡, 가야동계곡으로 이어지는 내설악의 천혜 경관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승려 경력 30년 이상 된 고승 중에서 엄격한 선발 기준에 의해 발탁된 고승들의 수행터(무금선원)가 있기에 기운이 청정하고 맑은 도량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찰이 사십구재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백담사는 혹시 고승들의 수행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며 아예 재(齊)를 지내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잡귀들의 범접이 없는 기운이 맑고 청정한 도량으로 유명하지요.


셋째는 내설악 계곡은 수량이 풍부하여 산행하는 동안 내내 물소리를 들을 수가 있는 것이 이유입니다. 화강암을 밟으면서 걸으면 불의 기운인 화기(火氣), 물소리를 들으면서 걸으면 물의 기운인 수기(水氣)를 느낄 수 있습니다. 즉 물과 불의 기운이 음양의 조화를 잘 이루어 대자연의 기운을 충전할 수 있는 최고의 산행 코스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곳에서 다양한 문화체험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담사는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있고, 봉정암은 사바세계의 교주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입니다. 오세암은 관세음보살님을 주불로 모시는 다섯 살 동자승이 득도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대표적인 문수도량인 영시암 등을 말사로 두고 있기도 합니다.



산사에서의 일상


백담사 템플스테이에서의 하루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벽 03:00시면 일어나 도량석을 시작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됩니다. 사찰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백담사는 03:30분에 새벽예불을 하고, 06:00시에 아침공양을 먹습니다. 과거엔 발우 공양이었으나 최신식 식당건물을 신축하여 식당에서 템플스테이 참여자와 사찰직원, 그리고 일부 기본교육을 받는 젊은 스님들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오전 10:00시부터 약 한 시간 가량 사시예불이 시작되고, 11:30분에 점심공양을 하고, 17:00시에 저녁공양, 그리고 저녁 18:30분(동절기는 18:00)에 저녁예불을 드립니다. 그리고 21:30분에는 일제히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어갑니다.


예불은 사찰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의식입니다. 범종과 법고, 목어와 운판을 차례로 치면서 중생들에게 법음을 들려주고 천수경, 반야심경, 발원문 낭독 순으로 진행됩니다.


예불시간에는 스님의 염불과 독경에 맞춰 함께 염불도 따라 하고 108배도 하면서 수행을 체험합니다. 절을 통해 탐욕과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데 특히 108배는 108가지 번뇌를 참회하며 소멸시키는 과정입니다. 절을 하는 것은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를 땅에 대고 몸을 최대한 낮춤으로써 겸허하게 자신과 만나는 시간으로 나를 깨우는 행동입니다. 전신운동이라 처음에는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절을 마치고 나면 육체와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루 세 번의 예불과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걷기 명상, 돌탑 쌓기, 독서, 다도(茶道), 참선 등을 하며 자유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밤에는 맑고 깊은 산중에서 밤하늘에 뜬 무수히 많은 별과 달을 볼 수 있습니다. 



경전, 그 심오한 뜻


대개 염불의 시작은 먼저 천수경을 읽으며 시작하는데 천수경은 무려 32페이지나 되는 장문의 경전입니다. 이들 대부분을 외우고 있는 스님을 처음 보면 저처럼 다들 무척 놀랄 것입니다. 특히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불교에 문외한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주문과 진언들로 이루어져 있어 따라 읽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천수경의 본래 명칭은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으로 관세음보살이 부처님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고 설법한 경전입니다. 천수경을 독송하면 일체의 업장이 소멸되고, 일체의 귀신이 침입하지 못하게 됩니다. 모든 일을 성취시키며 장수와 풍요를 얻게 된다고 하여 오늘날 불교 신자들에게 가장 많이 독송되는 경전 중의 하나입니다.


반야심경은 한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한글 번역판이 있어 그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원래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입니다. 수백 년에 걸쳐 편찬된 반야경전의 중심 사상을 260자로 함축시켜 서술한 경전으로 불교의 경전 중 가장 짧은 것에 속합니다.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구절 중에는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말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현상은 실체가 없이 텅 비어 있고, 텅 비어 있으니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물질적인 현상에는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기 때문에 현상일 수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이 오로지 돈과 출세에만 급급한 현실을 꼬집는 말로 저의 마음에도 깊이 와 닿았습니다.



산사를 안고 있는 대자연의 아름다움


저녁이 되면 산사는 저녁공양과 저녁예불을 끝으로 인기척이 완전히 끊어집니다. 등산객들도 모두 하산하고 절간 직원들도 모두 퇴근하지요. 저녁 아홉 시가 넘으면 몇 개의 보안등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방에서 취침에 듭니다. 남은 건 적막한 산중 고요와 대자연의 숨결뿐이지요. 


취침시간 전에 잠시 절 마당에 나가면 주변에서 계곡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이 들립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북극성, 북두칠성 같은 별자리를 감상하며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설악산 산등성이 넘어 휘영청 솟아 계곡을 밝히는 달을 보는 것 역시 도시에서는 누릴 수 없는 감동이었고요. 

 


대자연의 풍광은 세속에 찌든 마음 속 짐을 내려놓게 합니다. 고요함과 적막한 어둠, 그리고 달빛과 별빛이 함께하는 동안 산사의 밤공기를 타고 흐르는 계곡 소리는 적막함을 달래주는 좋은 친구가 됩니다. 디지털 문명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결핍되어 있는 자연이 주는 영감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맑은 장소가 바로 이곳인 듯합니다. 



▶백담사에서 오세암까지, 걷기 명상은 보너스


참선수행 방법 중에는 좌선이나 와선도 있지만 걷기명상도 있습니다. 백담사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내설악은 아름다운 산세와 넓은 계곡이 어우러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트레킹 코스이기도 합니다. 백담사에서 영시암,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까지 가는 거리는 10Km입니다. 왕복하면 무려 20Km를 걷게 되는 것이죠.



봉정암까지 당일치기 산행코스로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오세암까지는 날씨가 좋으면 빠른 걸음으로 5~6시간 정도면 충분합니다. 점심공양 후 바로 다녀오면 저녁공양 시간에 무리 없이 맞춰 도착할 수 있습니다.


백담사가 있는 내설악은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워 가을이 오면 수많은 등산객들이 단풍을 찾아 몰려오는 곳입니다. 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면 풍부한 수량과 계곡 소리가 발걸음의 피로를 풀어주어 여느 산행길보다 가뿐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울창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는 머리를 맑게 해주고 집중력을 높여주어 걷기명상하기에 최적의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깐 멈춤의 시간을 갖는 것, 대자연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것, 참선수행과 걷기명상을 통해 내면을 보는 노력을 하는 것이 바로 템플스테이입니다, 이것은 참된 나를 찾아 떠나는 최고의 마음 여행임을 직접 경험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바쁜 일상이지만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 꼭 한 번 템플스테이를 체험하시길 추천해드립니다.



정석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