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유럽에서 떨어져 나갔네요 (Out of Europe. Again)’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2016 유럽축구선수권 대회. 28일 축구 종가 잉글랜드가 아이슬란드에 1-2로 역전패하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트위터에 남긴 한마디. 잉글랜드 대표팀의 16강 탈락을 6월 24일 있었던 EU 탈퇴 찬반 투표에 비유해 표현한 것이죠. 그렇다면 브렉시트란 정확히 어떤 것일까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는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일컫는 그렉시트(Grexit)에서 나온 신조어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EU 회원국 재정부담금이 커진 영국에서는 보수당 중심으로 EU 회의론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015년 5월 총선 당시, 승리하면 브렉시트 찬반 국민 투표를 하겠다는 약속을 내걸었습니다. 2016년 6월 24일 브렉시트 찬반 투표가 벌어지기 전까지 양측 주장이 첨예하게 맞섰지만, 투표의 결과는 탈퇴 51.9%, 잔류 48.1%로 나타나 브렉시트가 결정되었습니다.
영국은 앞으로 관련 내용을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라 탈퇴를 진행하게 되는데요. 브렉시트 결정으로 금값의 폭등, 엔화 가치 변동이 생기고 영국으로의 투자가 줄어드는 등 세계적인 파장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런 브렉시트 소식에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바로 잉글랜드와 유럽 축구계죠!
유럽 축구엔 자본이 넘칩니다. 특히 유럽 축구 리그의 빅 4라 불리는 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리그는 이적 시장 지출 총 금액만 4조 2,273억 원입니다. 여기에 중계권료, 유니폼 스폰, A보드 노출 등 광고 수입도 천문학적이죠.
이 중에서도 잉글랜드 리그 EPL은 유럽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EPL은 지난해에만 48억 달러(약 5조 7,000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이 중 중계권료로만 2013년부터 올해까지 30억 1,800만 파운드(약 5조 1,646억 원)을 벌었고요. 각 클럽이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지출하는 돈도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2015년 BBC 방송에 따르면 EPL 여름 이적 시장 총지출 금액은 8억 7,000만 파운드(약 1조 5,000억 원)로 역대 최고. 유럽 금융 위기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년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럽축구의 큰 손 영국의 이탈은 유럽 축구의 위기로 볼 수 있는 거죠.
티에리 앙리, 루드 판 니스텔루이, 에릭 칸토나. 이 유명 선수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바로 EU 제도를 활용해 특별한 비자(워크퍼밋) 없이 EPL 무대를 누볐고 스타가 되었다는 사실이죠. 잉글랜드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 역시 마드리드, 파리 등 유럽 리그를 자유롭게 누비며 선수생활을 해왔고요. 이처럼 영국은 EU제도를 이용해 유망주 및 스타 플레이어를 키웠고, EPL의 경쟁력이 올라가며 세계 최고의 흥행 리그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결정되면서 EU 출신 선수 영입을 하려면 기존 비 EU 국가가 EPL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던 까다로운 비자(워크퍼밋)을 거쳐야 됩니다.
또한 경제 위기 확대에 따른 견제심리, 불안 심리로 인해 파운드화가 약세를 보이면 EPL은 선수 영입 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스타 선수의 연봉에도 더 큰 비용을 지급해야 하죠. 한 마디로 브렉시트가 레알 마드리드 공격수 모라타를 눈독 들이던 여러 영국 구단들을 머뭇거리게 하고 있는 셈입니다.
당장 문제는 뛰고 있는 EU국 스타플레이어 및 유망주들이 외국인 선수로 간주되어 방출 위기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BBC 가디언 등 영국 매체들에 의하면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EU 출신 선수는 총 160여명이며 그 중 120명이 취업허가를 받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EPL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영국이 논 EU 국가로 분류되면 다른 유럽 리그에서 잉글랜드 선수들을 찾기 힘들어집니다. 여기에 유럽을 중심으로 열리는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참가를 둘러싸고도 문제가 예상되는데요. 오는 2020년 영국 런던 웸블리와 각국에서 동시에 열리는 유럽축구선수권에 EU 회원이 아닌 영국으로서 참가한다면, 대회 수익금을 놓고 세금 계산 등 많은 것이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유럽의 빅4 리그가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팬층을 거느릴 수 있었던 것은 EU 간 ‘스타 선수’들의 자유로운 이동, 선수 육성 시스템의 역할이 컸는데요.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하면서 유럽 축구 시장 전체 위상 하락이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EU와 관계없는 한국 선수들에게도 브렉시트의 영향이 있을지 궁금해지는데요. 현재 EPL에는 손흥민, 기성용, 이청용 등 여러 선수가 진출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부터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영국 워크퍼밋을 받아야 했던 한국 선수들에게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EPL에서 EU 선수들의 입지가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비유럽 선수들에게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는데요. 유럽 선수들의 빈자리를 다른 대륙 선수들로 채우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영국의 브렉시트가 EU의 보수화를 불러와 오히려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최근 영국 스카이 스포츠(British Sky Broadcasting)는 ‘레스터시티 우승의 주역 캉테를 더는 EPL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어린 시절 영국으로 건너가 초대형 스타가 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같은 선수도 앞으로는 보기 힘들어질지도 모릅니다. 물론, 잉글랜드에서는 EU 유망주와 스타 선수 대신 자국 유망주로 자리를 채울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목소리도 들려오는 중이죠.
영국은 아직 2년간의 탈퇴 준비 기간을 거쳐야 하는 만큼, 당장 유럽축구 시장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예기간 후에는 본격적인 혼란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공은 둥글다”. 문득 전설적인 축구 감독 제프 헤르베르거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축구의 승패를 놓고 한 말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브렉시트로 인한 세계 경제와 유럽연합의 미래 그리고 축구 시장의 지각변동 역시 차분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