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소설로 발표된 후 2013년 동명의 영화까지 만들어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인생은 흔히 연극 같다고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만큼 파란만장한 삶이 또 있을까 합니다.
양로원에서 준비한 100번째 생일 파티 1시간 전에 주인공 알란이 창문을 넘어 도망치며 소설은 시작됩니다. 계획도 없이 도망쳐 수중엔 동전 몇 개뿐인 알란은 슬리퍼 차림으로 시골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가지고 있는 돈만큼만 갈 수 있는 버스를 타게 되죠. 버스를 타기 전 건달로 보이는 젊은이가 화장실을 가느라 맡겨버린 트렁크를 엉겁결에 같이 끌고 버스를 타는 바람에 100세 노인의 모험이 펼쳐집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왜? 100세 생일의 주인공이 창문을 넘어 도망쳐야 했을까? 치매인가? 양로원에서 학대라도 받았나?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걸까? 등의 궁금증을 계속 품으며 책을 읽어나갔고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할아버지의 인생에서 그만의 가치 있는 삶과 인생설계의 키워드를 찾을 수 있었답니다. 그 삶의 가치와 열쇠는 무엇일까요?
▶현실을 극복하는 긍적적인 태도의 삶
이 소설은 등장인물간 벌어지는 이야기로 볼 때 코미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요. 어릴 적부터 폭탄에만 관심이 있고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알란’, 버려진 폐역에 살며 건망증 때문에 사람을 살해하고서 큰돈을 벌고자 알란과 동행하게 되는 ‘율리우스’, 하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아 전공만 수십 개를 바꾼 척척박사 ‘베니’, 그리고 친절한 마음씨로 나그네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며 코끼리를 키우는 ‘구닐라’ 이 네 사람이 일으키는 요절복통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 중 알란은 100년을 살아온 인생에 등장하는 역사의 유명인 (아인슈타인, 히틀러, 스탈린, 트루먼, 김일성, 마우쩌둥 등)들과 더불어 현대사의 주요 장면마다 자신이 끼어들며 역사적 흐름들을 바꿔 놓는 활약을 하지만 그 분위기는 너무나 담담한 풍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도 주인공의 긍정적이며 낙천적인 사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알란은 어릴 적 정치색이 강한 아버지가 어이없이 일찍 죽고 어머니마저 유언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 일뿐이란다” )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요.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절대로 불평하지 않는 삶을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였습니다. 결국 이 말은 알란의 인생관이 되고 그 덕에 모든 것을 낙관적이고 굴곡 있는 삶을 현명하게 대처하며 살게 된 계기가 됩니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서!
소설에서는 비록 어머니의 영향으로 주인공의 삶이 낙관적인 태도와 여유로움을 보이지만 현실을 살펴보면 그는 냉전시대부터 사회주의, 자본주의냐 하는 이념을 떠나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을 하며 살아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가장 잘 알고 할 수 있는 일이 '폭탄제조와 폭발' 이었다는 점부터 소설적인 이야기지만 이유야 어쨌든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숱한 사건들을 치르며 고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역사 속에 한 획을 긋는 인물들과 인맥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인정(認定)을 받아왔고 자신의 분야에서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열정(熱情)적인 삶은 100세 시대를 맞는 누구나 갖춰야 할 덕목이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작은 일이건 큰 사업이건 각자 인생의 큰 범주에서는 늦깎이가 되지 않습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하는데 무슨 일이 내 심장을 뛰게 하는지? 마지막 남은 인생에 에너지를 기꺼이 쏟고 싶은 그 일은 무엇인지 인생 100세 시대를 맞는 각자가 알란의 삶처럼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여겨지네요.
▶현실의 한계? 자신을 막고 있는 창문부터 뛰어넘자
분명히 알란의 삶은 평범과는 거리가 먼 굴곡 많은 인생인데요. 살아온 시기인 1905년부터 2005년 자체가 전쟁과 냉전, 냉전의 종결로 이어지는 시대입니다. 그 시기에 알란은 늘 누군가로부터 쫓기고 붙잡히기를 반복하는 삶을 사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100세를 맞는 생일조차 양로원에서 탈출해 갱단과 형사들에게 쫓기게 되어도 늘 여유만만입니다. 그것이 아마도 자기 삶이 가진 연속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알란은 역동적인 삶을 찾아서 답답하고 지루한 양로원을 벗어나 또 다른 모험을 감행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누구나 살다 보면 지루하게 반복되는 자신의 삶에서 창문을 넘는 심정으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제한하게 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 알란은 100세 생일 용감하게도 그 창문을 넘어 도망치는 것입니다. 무릎에서 통증을 느끼는 노인이 슬리퍼를 끌고 겨우 10만 원 가량의 돈만을 쥔 채 양로원을 '탈출'한 것이죠. 무거운 현실을 그리 가볍게 극복하면서 말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정답은 없습니다. 100세 노인 알란이 답답하고 지루한 양로원이 아니라 눈 부신 태양이 비치는 발리의 해변에 닿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애초에 창문을 넘지 않았다면 과연 가능했을까요? 지금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창문은 무엇일까요? 훌쩍 뛰어넘을지,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계속 창틀을 부여잡고 고민하고 있을지는 결국 우리 각자의 몫인 셈입니다.
▶소중한 순간이 오면 계산하지 말고 누리자!
‘꽃보다 할배’ 가 아닌 ‘폭탄 든 할배’ 라 할 수 있는 알란의 삶은 파란만장합니다. 주인공의 10대시절은 폭탄 제조 달인으로서 남다른 능력을 보유하고, 20대에는 폭탄 실험 중 실수로 이웃이 사망해 위험인물로서 정신병원에 수감. 30대에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다리 폭파 중 지나가던 스페인 파시스트 프랑코의 목숨을 구해 그의 최 측근이 되기도 합니다. 40대에는 미국의 원자탄 극비 개발계획이 갖고 있던 치명적 결함을 해결해 세계대전을 종결시키고, 50대에는 CIA 요원으로 발탁되어 미국과 러시아의 이중 스파이로 활약하다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일조까지 하는 우여곡절 삶의 소유자죠. 알란은 마냥 행복하게만 살아온 인물도 아닙니다. 그의 긴 삶은 아픔과 불행, 고난으로 얼룩져 있는데요. 그가 겪는 모진 풍파는 양로원에서 나와 쫓기는 노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웃고 꿈꾸며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노인입니다.
▶인생에서 꼭 후회하게 되는 5가지는?
그의 삶은 어려서부터 제대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 했기에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어려운 인생이었지만 평생을 남 좋은 일만 하고 살게 됩니다.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지 못 했던 주인공은 마지막 인도네시아 발리 해변에서 굴곡 많은 삶을 돌이키며 아쉬움과 후회를 느끼게 됩니다.
2015년 영국 ‘가디언지’에서 발표한 “죽을 때 후회하는 5가지”는 다음과 같은데요. 1위: 내 뜻대로 살걸, 2위: 일 좀 덜할 걸, 3위: 화 좀 더 낼걸, 4위: 친구들 챙길 걸, 5위: 도전하며 살걸 이라고 합니다.
100세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발리 해변에서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려라” 고 하는 베니의 조언은 아마도 ‘인생 뭐 별거 있을까? 움직일 수 있을 때 많은 고민으로 서성대지 말고 바로 행동할 수 있어야’ 라고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점점 포기하는 것이 늘어나는 우리네 인생을 볼 때 100세 노인 알란은 ‘한 줄기 힐링’ 같은 인물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