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추워진 초겨울 날씨에 두툼한 옷을 꺼내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는 분들이 많습니다. 절기상 상강이 2일 전에 지났지만, 요즘 추워도 너~~무 춥습니다. 그렇기에 ‘‘벌써 겨울이 왔나’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도 적지 않죠. 하지만 아직 가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감성이 풍부한 계절에 맞게 책, 영화, 단풍까지 즐길 거리가 너무나도 다양한데요. 10월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세계의 문화가 어우러진 특별한 공연은 어떠세요?
<출처 : 국립극장>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국립극장에선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세계 곳곳의 예술공연을 한 자리에 만나볼 수 있는데요. 그 중에서 오늘 소개해 드릴 공연은 바로 ‘2012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입니다. 특히 올해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수교를 맺은 이후 20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죠.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중국의 시대와 문화를 폭넓게 반영하는 예술작품 3편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였는데요. 우리나라에서 만나보는 작은 중국! 그 특별한 무대 현장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국경을 넘어 모두가 공감하는 경극 ‘숴린낭’
화려한 옷과 장신구, 무엇보다도 영화 ‘패왕별희’에서 볼 수 있는 짙은 화장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연극! 바로 ‘경극’이겠죠. 우리에겐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경극을 절제된 연기로 관객 모두를 사로잡았던 중국 국립경극원의 절도 있는 경극 ‘숴린낭’을 소개합니다.
<출처 : 국립극장>
‘숴린낭’을 멋지게 연기하고 있는 중국 국립경극원은 중국 문화부에 소속된 국립예술단체로 경극배우 ‘매란방’에 의해 창설되었어요. ‘숴린낭’은 중국 국립경극원의 레퍼토리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경극이라고 합니다.
‘숴린낭’은 중국에서 친정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선물하는 복주머니를 뜻한다고 해요. 경극 ‘숴린낭’은 복주머니에 담긴 일화와 함께, 가진 것을 나누면 훗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복이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숴린낭’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경극의 매력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섬세함’인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무대를 쉴새 없이 거니는 모습과 아름다운 춤사위가 펼쳐지는 경극은 너무나도 화려했답니다. 심지어 무대 위의 배우들이 등장과 퇴장을 통해서 모든 장면을 표현해 내곤 하는데요. 이러한 연기는 고도의 훈련을 통해 얻게 되는 ‘연기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비록 처음엔 음악과 노래, 그리고 경극배우들의 절제된 듯한 동작은 다소 낯설게도 느껴졌지만, 극에 점점 몰입하면서 여주인공 ‘설상령’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국경을 넘어 함께 공감할 수 있었어요.
경극 ‘숴린낭’은 선이 악을 물리친다는 대표적인 ‘권선징악’을 주제로 펼치는 연극입니다. 문화는 다를지언정, 국경을 넘어 모든 세대를 아울러 공감하고 중국 특유의 이색적인 매력을 잘 살린 공연이 아닐까싶어요. 또한, 서정적인 음악과 노래가 어우러지면서 경극을 잘 모르는 관객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친근한 작품이랍니다.
▶아름다운 발레 속에 스며든 중국의 멋, ‘홍등’
아름다운 몸짓으로 예술을 표현하는 ‘발레’는 보면 볼수록 동작 하나하나마다 감동과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죠. ‘2012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과 함께 국립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발레와 문화가 결합한 레퍼토리, ‘홍등’을 소개합니다.
<출처 : 국립극장>
중국국가발레단이 연출한 ‘홍등’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예모’가 연출한 작품으로써, 20년 전, 감독을 맡았던 영화 ‘홍등’을 연극과 발레를 결합하여 새롭게 각색한 작품입니다. 국립중앙발레단은중국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발레단이라고 하는데요. 기존의 서양발레를 이용하여 중국의 민속 예술과 접목해 중국 현대발레의 표본이 되고 있답니다.
발레 ‘홍등’은 원작영화보다 한층 강화된 비극적 정서를 담아내고 있었어요. 특히, 몰입감을 더하기 위해 중국 전통 그림자극과 경극을 도입하여 장예모 감독 특유의 웅장한 스케일을 선보였는데요. 무대를 가득 메운 붉은 빛 홍등과 그림자극으로 표현된 초야는 매혹적인 색채감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인물의 심리묘사까지 완벽하게 연출해 내는 이른바 ‘드라마틱 발레’가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답니다.
중국의 전통의상과 화려한 무대, 소품 하나까지 신경을 쓴 듯한 세심함은 물론이며 중국적인 음색을 덧입힌 오케스트라 연주까지 완벽하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무대! 그 속에서 저는 마치 무대 위의 작은 중국을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강렬한 이미지와 독특한 연출로 관객들에게 화려한 볼거리를 안겨준 아름다운 발레공연이었답니다.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블랙코미디의 진수, ‘K이야기’
만약 자신이 하루아침에 ‘벌레’가 되어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할 것 같은데요. 벌레가 된 주인공을 바라보는 차갑고 냉철한 시선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고독’이라는 주제로 그 편견들을 꼬집는 ‘K이야기’에 대해 알아볼까요?
<출처 : 국립극장>
‘K이야기’를 연기한 ‘중국 홍콩현대무용단’은 세계적인 안무가 ‘린 화이민’이 극찬한 홍콩 대표 무용단으로, 1979년 설립되어 3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무용단입니다. 그들이 국립극장에서 연기하는 ‘K이야기’는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해버린 남자 그레고르의 이야기인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자고 일어나니 벌레로 변해버린 주인공 K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자신을 비웃는 군중들 속에서 K는 다시 잠을 청하게 되지만, 꿈 속에서 서로 역할이 바뀌어버리는 사람들. K는 갈수록 자신이 꿈을 꾸는 건지, 현실에 있는 건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점차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는 블랙코미디입니다.
<연습실에서 만난 홍콩현대무용단의 모습>
‘K이야기’는 유명한 안무가인 ‘헬렌라이(Helen Lai)’가 주인공을 맡았는데요. 홍콩을 강타한 ‘사스’를 배경으로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형상화하면서 인간의 이기심을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포착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K이야기’를 함께 연기하는 무용수들은 중절모를 쓴 남자 주인공처럼 모자를 쓰고, 검정색 수트를 입으면서 획일화되고 고립된 개인들을 상징했어요. ‘K이야기’와 함께라면 자기 자신을 한번쯤은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아 열리는‘2012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경극에서부터 발레, 현대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가득했답니다. 풍성한 공연들로 가득했던 10월 국립극장은 어느새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는데요. 다가오는 주말을 맞아 10월 마지막 주에 펼쳐지는 가을공연 피날레를 직접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