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의 꽃’(wallflower)'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원래는 ‘십자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을 뜻하는 이 단어는, 인간관계에 적용되면 아주 고약한 단어로 전락하고 마는데요. 미국에서는 우리문화와는 조금 달리, 졸업파티가 성장기에 꽤 중요한 행사로, 그 파티에서 댄스 파트너 신청을 받지 못해서 벽 앞에 서 있기만 하는 사람들을 바로 ‘벽의 꽃’이라고 부릅니다. 분명 파티가 한창인 흥겨운 공간에 함께 있지만, 인기가 없어서, 사랑받지 못해서 친구들이 춤추는 것을 바라만 보며 자괴감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매일 함께 생활하지만 그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을 때 느껴야 하는 절대적인 고독의 크기는 생각보다 깊습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이후 사회생활에도 인관관계의 어려움은 고스란히 이어지는데요. 사실 이럴 때 업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 것보다도, 누군가와 소통하지 못한 채 혼자 동떨어져 있다면 그 고통은 훨씬 강합니다. <사랑은 부엉부엉>의 남자 ‘로키’야말로 회사에서 벽의 꽃이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동료들은 매사 실수가 잦은 그를 완전히 무시하고 함께 말 섞는 것조차 귀찮아하는데요. 함께 있지만, 거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의 상황에 가깝습니다. 회사에서 그를 무시하는 처사는 단순히 심정적인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턴사원이 들어오자 앉을 자리가 없다며, 경력자인 그의 자리를 박스가 쌓인 구석자리로 옮기기까지 하는데요. 더 답답한 건 로키는 이런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도 한마디 제대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무시당하는 것에 익숙한 탓에, 모든 걸 자신 탓으로 돌리는데요. 그러니 카페에서 종업원이, ‘어이, 친구’하고 한마디 해주기만 해도, 자신을 인정해주는 줄 알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지는 착각에 빠져 살게 되는 것이지요.
로키의 심리상태는 과연 구제가 가능할까요? 이 영화는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그의 자신감을 붐업 시켜주는데요. 바로 난데없이 그의 집으로 날아 들어온 수리부엉이 한 마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집에 참새도 아니고 희귀종인 수리부엉이가 날아 들어와 떠날 줄을 모르는데요. 정말 희한한 일이지만 로키가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고 귀기울여주지도 않습니다. 결국 부엉이를 회사로 데리고 가겠으니 내 말을 믿으라 공표를 하는데요. 막상 데리고 나가려고 하자 꼼짝도 않는 부엉이 때문에 낭패를 겪습니다.
자, 더 기가막힌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입니다. 궁여지책으로 로키는 부엉이를 대신해 자기가 부엉이 탈을 쓰고 출근을 하는데요. 신기한 건 이제까지 그를 거들떠보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둘 그를 같은 동료로 대해주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아주 우연히, 그러나 운명임에 틀림없이, 팬더 탈을 쓴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부엉이 탈을 쓴 남자와 팬더 탈을 쓴 여자의 멜로라, 이런 연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을텐데요. 우리가 그렇게 바라볼 뿐 막상 둘은 너무 행복해 보입니다. 게다가 이 연애로 인해 자신감 없던 로키가 180도 달라집니다. 로키는 "나는 고양이보다 존재감 없는 사람이었는데 당신 정말 너무 너무 너무 예쁘네요.“라며 대뜸 고백을 하는 저돌적인 면모를 선보입니다. 회사의 광고 진행 건도 일사천리로 해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존재감이 하나도 없었던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팬더 양 앞에서라면 뭐든 잘 할수 있고, 해주고 싶은 바람직하고 든든한 연인이 됩니다. 운동화를 한번도 신어보지 못한 팬더 양에게 운동화를 신겨주고, 자전거를 한번도 타보지 못한 팬더 양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면서 그렇게 말입니다.
람지 베디아 감독이 이렇게 독특한 설정을 하게 된 건 바로 한 치즈 광고에서부터 였다고 말하는데요. 팬더 탈을 쓴 남자가 화를 내는 영상이었는데 아무도 그가 왜 그런 상황인지 알려고 하지 않더랍니다. 그는 여기서 이야기를 조금 더 발전시켜 봅니다. 만약 그 팬더탈을 쓴 남자에게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에서 로키가 부엉이를 발견하고 나서, 각종 조류와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에 가게 되는데요. 낡고 오래된 이 공간이 영화의 다소 황당한 설정과 조화를 이루는 신비로운 공간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물론 팬더와 부엉이 탈이라니, 배우들에게는 얼굴도 나오지 않는 이 독특한 목소리 연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고 합니다. 특히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람지 베디아 감독이 주연 배우인 부엉이 군 역할도 동시에 진행 했습니다. 세계적인 모델 엘로디 부세즈가 팬더 연기를 했습니다.
자기비하, 낙담, 외로움, 고독같은 이야기들은 ‘사랑’의 영역에서 발을 들여놓을 자리가 없어 보이는 것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 자신만만해지고, 크게 낙담하지 않으며, 외로울 틈 이 없기때문일 텐데요. 로키는 팬더 양으로 인해 결국 생활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마 로키처럼 사정이 나오지 않았지만, 팬더 양 역시 같은 방식의 자존감을 찾게 되었을텐데요. <사랑은 부엉부엉>은 따뜻한 사랑이 줄 수 있는 것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영향력이 큰 것인지 말해주는 예입니다. 이 겨울에 황당하지만, 결국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게 다가오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