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SNS에서 진짜 ‘나’의 모습을 찾다. <립반윙클의 신부>


얼마 전 한 친구가 저에게 이런 넋두리를 하더군요. “인스타그램 이제 그만하려고. 보다 보면 나만 못살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매일 회사 근처의 식당에서 맛없는 한 끼를 때우고,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다 난장판이 되어 있는 집으로 오는 자신의 생활과 달리, 인스타그램 유저들은 모두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해외 곳곳을 여행하고, 인테리어가 잘 된 예쁜 집에서 단란하게 살아가는 듯 보인다는데요. 그 친구 말대로 그렇게 남부러운 삶을 사는 이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크기만큼 허락된 작은 화면 속에서는 얼마든지 트릭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업로드를 위해 사진을 찍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지저분한 것들은 프레임 바깥으로 몰아내고, 정제된 것들만 담으려 애쓰지 않나요. 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데요. 이렇게 ‘보여주기 위한’ 또 하나의 자신을 얼마나 잘 만드는지가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비록 내 생활은 멋이 좀 없더라도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만큼은 좀 더 풍족하고 멋있어 보일 수 있게, 나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지요. SNS가 우리 삶에 이렇게 깊이 관여한 이상, 실제 나와 가상의 나, 그 간극은 점점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SNS라는 가면에 감춰진 현대인들의 진짜 모습을 말하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립반윙클의 신부>는 이렇게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의해서 살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점검을 해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평범한 성격의 여성 나나미(쿠로키 하루)가 겪는 굴곡의 시간들을 통해, SNS라는 가면을 쓰고 서로를 대하는 게 일상화 된 현대인에게, 과연 인간 대 인간으로서 솔직한 소통이 가능할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먼저 나나미의 결혼 스토리가 흥미로운데요. 그녀가 결혼 상대를 만난 곳은 SNS '플래닛’을 통해서입니다. 가상의 공간에서 만난 후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직접 만나 연애하고 결혼까지 이어졌는데요. 어쩌면 서로 너무 잘 맞아서 금세 통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나나미 자신은 이 만남에 일말의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남편은, ‘간단히 원클릭으로’, ‘인터넷 쇼핑하듯 손쉽게 손에 넣은’ 배우자이지요. 그렇다보니 온전한 형태의 믿음, 결속력도 약해집니다. 나나미의 남편을 향한 이런 의심은 결국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선생으로 재직 중이던 그녀는 소심한 성격 탓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해고당했음에도 “결혼 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다”라고 남편에게 말하며, 친지가 별로 없는 자신의 집안이 남편 집안에 뒤처진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남편 몰래 ‘피로연 대리 출석 서비스’를 사용해 가짜 하객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믿기지 않지만 이 서비스는, 영화의 배경인 일본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이 통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초라해 보이지 않기 위해 가장 솔직해야 할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매일매일 거짓말을 해야 하는 여자. 한번 시작한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로 이어지며 진짜 나나미는 점차 사라지는 느낌인데요. 그녀는 작정하고 범죄를 저지르지는 범죄자는 아니지만, 쌓여져 가는 거짓말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진짜 자신을 잃어버리는 불행한 인물입니다. 그러니 나나미가 인터넷으로 만난 남편에 대해, 자신과 마찬가지로 거짓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닐까 싶은데요. 참 씁쓸해 지는 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거짓 생활로 인해 나나미의 결혼 생활은 결국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신이 가진 불안과 의심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후 남편과 이혼한 나나미는 돈을 벌기 위해 피로연 대리 출석 서비스 아르바이트를 하며 낯선 환경에 처하게 됩니다. 거짓을 위해 고용된 아르바이트생들이 진짜 대신 가짜 이름을 쓰며 서로에게 친근함을 과시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데요. 겉으로는 따뜻하고 친절하지만, 그들에게 진짜 속마음, 진심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 나나미는 플래닛의 서비스맨 아무로(아야노 고)를 통해서 그녀의 삶을 통째로 바꿔줄 ‘립반윙클’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여성 마시로(코코)와의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볼 법한 미스테리한 사건을 나나미가 겪는 동안, <립반윙클의 신부>는 현대인에게 점점 부족해지고 있는 ‘진짜 세상’이 무엇인지, 가상이 아닌 진짜의 눈으로 보게 만들어 줍니다. 


영화 제목인 <립반윙클의 신부>는 W. 어빙의 단편집 <스케치북>에 수록된 단편 소설 <립 반 윙클>에서 따온 말입니다.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전 카츠킬 산맥 주변 마을에 살던 게으른 남성 ‘립 반 윙클’이 산에 올라가서 낯선 이를 만나 술을 얻어 마신 후 하룻밤 만에 20년이 흘렀고, 과거의 세계에서 돌아 온 그가 20년 후의 마을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는 판타지 물입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립반윙클이라는 어감 때문에 이 제목을 차용했다고 하지만, “마치 소설의 오마주처럼 새로운 미지의 문을 하나씩 열어나가는 듯한 전개가 됐다”며 원작과의 연관성을 드러냈는데요. “현재 사회를 그리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그 시대의 소통의 아이템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 무엇이 ‘가장 일본 현대 사회를 잘 보여주는 소재일까?’라고 고민했을 때 SNS라고 생각했다. 휴대폰이 없거나 SNS 계정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나나미에게서 지금의 일본 사회, 현대의 속성을 말하고자 합니다.



자신을 속이느라 쫓기고 급급했던 나나미가, 모든 과오를 떨쳐버리고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 나간다는 점은 원작과의 결속력이 더해지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복잡한 도심, 모두가 친근을 과장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누가 사라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비정한 현실 속에서 나나미는 결국 힘겹게 자신을 찾아나가고 성장해 나가는 게 아닐까요. 


<영상 : 립반윙클의 신부 예고편 >


<립반윙클의 신부>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장편 극영화 <하나와 앨리스>(2004) 이후 12년 만에 국내에 개봉되는 작품입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일본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자연광을 담아내려 노력하는데요. 사계절을 담아내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데 4년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미스터리물의 속성을 띄지만 건조한 시선에 머무는 대신 ‘이와이 월드’의 아름다운 영상과 미세한 떨림을 놓치지 않고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나나미가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나나미처럼 불안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응원해 봅니다. 





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