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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비극적인 사고로 엇갈린 운명 <에브리띵 윌 비 파인>



“그래서 왕자와 공주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어릴 적 읽었던 예쁜 동화책 속에나 나오는 결론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깨닫게 됩니다. 좋은 결론이냐 나쁜 결론이냐를 떠나서, 인생에 과연 ‘결론’이라는게 존재할까라는 질문부터 해야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장은 비록 일이 꼬여 힘들어도 시간이 흘러 그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으며, 뭔가 서둘러 해결되었다고 안심했다가도 그것이 부메랑처럼 되돌아 와 뒤통수를 치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과거와 미래는 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섣불리 결론이 나지 않는 끊임없는 과정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어집니다.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은 작품을 통해서 늘 이런 인생의 ‘과정’들을 탐색하는 여정을 작품 속에 그려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일반적 의미의 여행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천사 다미엘이 베를린 도시의 배회를 통해 자아와 만나게 되는 <베를린 천사의 시>나 미국의 음반 프로듀서는 쿠바로 가서 잊혀진 쿠바의 밴드의 음악을 되살리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여행을 통해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돈 컴 노킹>도 예외가 될 수 없죠. 한때 위세를 날렸지만 지금은 한물간 배우가 어딘가 있을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옛 애인을 찾아 나선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펼칩니다. 이 특별한 여행을 위해 그는 주거지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는데요, 이 먼 곳으로의 여정에서 만나는 건 결국 자기의 지난 인생과 내면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에브리띵 윌 비 파인 예고편>


<에브리띵 윌 비 파인>에서도 그의 이런 관찰의 여행기를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피나>(2011),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2014) 등 다큐멘터리 연출에 치중해왔던 빔 벤더스가 <팔레르모 슈팅>(2008) 이후 만든 7년 만의 장편 극영화라는 점에서 특히 더 관심을 모으는데요.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반된 상황을 오랜 시간에 걸쳐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이야기는 좀 지독한 여정이기도 합니다. 소설가 토마스(제임스 프랭코)는 글이 잘 풀리지 않아 예민해진 상태에서 여자친구와 신경전을 벌이게 되고, 운전 중 그만 교통사고를 냅니다.


마침 눈썰매를 타던 꼬마 니콜라스가 그 사고로 죽게 되는데요. 사고로 인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토마스는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 사라(레이첼 맥애덤스)와 결별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는 과거의 과오를 극복해 나갑니다. 마침 집필하던 책이 호응을 얻으며 작가로 크게 성공하게 되고, 새로운 여자친구와도 가정을 꾸리는 등 정상궤도에 들어선 것이지요. 

 


피해자 쪽도 시간이 흘러 점차 고통을 치유 해나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상황은 좀 다릅니. 소년의 엄마(샬롯 갱스부르)와 당시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소년의 동생 크리스토퍼는 그 아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피폐해져 갑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크리스토퍼는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아로 성장하게 되고, 크리스토퍼는 토마스에게 자신의 고민을 상담해 달라며 만남을 요청합니다.


사고 당시, 잠깐 동안이지만 토마스는 차 아래 깔린 죽은 니콜라스를 보지 못하고 차에서 빗겨나간 동생 크리스토퍼만 보고는 안도를 하는데요. 그리고는 놀라 겁먹은 크리스토퍼를 집으로 데려다주면서 그는 “다 괜찮을 거야”라고 거듭 안심을 시킵니다. ‘아무렇지도 않을거야’라는 결국 잠깐이었을 뿐, 인생에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커다란 불운이 잠복해 있었던 것이지요.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이렇게 발생한 사건 이후의 시간들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과연 이 사건을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고통과 극복에 관한 문제로 손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사고 이후 힘들었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 이해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적 결론을 내기에 앞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소년이 달리는 차로 뛰어 들어 사고가 났기 때문에 토마스에게 법적으로 배상을 해야 할 책임은 없는데요. 그럼에도 토마스는 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을 쉽사리 떨치지 못하고 괴로워합니다.


 물론 사고 후 2년, 그리고 4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서서히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출판사 대표는 그에게 “자네 같은 직업의 아이러니는 세상 모든 일이 언젠가 자양분이 된다는 거야”라며 고 이후 그의 글이 확연히 좋아졌음을 알려줍니다. 정말 그의 글과 작가로서의 명성은 이 비극을 자양분으로 하고 향상 된 것일까요? 반대로 소년의 동생 크리스토퍼가 자라서 문제아가 된 건 사고로 인한 충격 때문일까요? 그 누구도 이에 대해 100% 책임을 전가할 수도 또 자신있게 아무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보통 영화에서 볼 법한 충격적 사건을 내세우지 않은 채, 그저 그들 사이에 전개되는 11년의 긴 세월을 그저 묵묵히 바라보는데 영화의 시간을 할애하는데요. 빔 벤더스 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전개 해 온 이런 여정은 이번엔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묘사에 있습니다. 바로 누구도 섣불리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탐구이지요.  영화에서는 자책하지만 결국 그 시간을 피해가고 싶어하는 토마스의 심리가 도드라져 보이는데요. 이 영화의 핵심은 그런 토마스에게 손가락질을 하다가도 만약 이런 비극의 상황이 막상 펼쳐진다면 그 손가락의 방향이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니지 않을까 점검해 보게 된다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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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