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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생명

특별하고 끈끈한 인연으로 이어진 너는 내 운명 <지연선 지점장, 정용환 지점장>



부모님 가업을 이어서 일본이나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업승계를 이룬다면? 최근 한국에서도 가업승계 전형이 전문 특성화고 입시에 도입되었을 정도로 ‘100년 장수 가게’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이렇듯 가업을 잇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저 역시 비슷한 상상을 그려봅니다. ‘가족들이 함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면 재미있을까? 일에 집중하기 어렵지 않을까?’ 사실 보험회사에는 가족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긴 합니다. 언니가 먼저 FP 일을 시작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언니가 부러워 동생이 함께 FP의 일을 시작한다거나, 엄마가 활동적으로 일하면서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는 것에 매력을 느껴 딸이 FP의 길로 들어선다거나 하는 경우가 적은 편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엄마, 아들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비단 보험회사에서만 보기 힘든 경우는 아니겠지요. 바로 여기 한화생명이라는 울타리 내에 엄마와 아들이 근무하는 현장을 찾아봤습니다. 바로 한화생명 번동지점 지연선 지점장과 신구리TFP지점 정용환 지점장이랍니다. 한 지붕 사무실은 아니지만 같은 회사에서 같은 업무를 하며 서로에게 조력자, 조언자가 되는 두 분을 만나보았습니다.




 

▶ 공채 입사에서 지점장까지⋯


지연선 지점장님의 입사 초기는 어떠셨나요?


1984년에 대한생명을 입사했는데요. 당시 하루하루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죠. 사무직 공채로 금융회사에 당당하게 입사했다는 자부심도 대단했고요. 그때는 설계사로 불렸던 FP들과의 생활도 매우 만족스러웠지요. 그 시절에는 여성이 결혼하면 당연히 일을 그만두는 시절이었거든요. 하지만 사무실에서 일하는 FP 대부분이 기혼 여성인지라 저도 결혼 이후 계속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 행복했어요. 그래서 첫째 아이를 가지고서도 고민 없이 업무에 매진할 수 있었죠. 주변에 ‘일하는 엄마들’이 다수인 환경이 정말 큰 몫을 했고요. 


사무직으로 입사하셨는데, 어떻게 지점장까지 되셨나요?


입사해서 하루하루 성실히, 묵묵히 일을 하다 보니 직무 전환의 기회가 찾아왔어요. 긍정적이고 침착한 업무처리를 눈여겨 봐주셨던 당시 지점장님과 주변 추천으로 지점장이 되었지요. 스물일곱 살의 어린 나이였는데요. 게다가 첫째 아이가 태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지만 주저하지 않았어요. 3월 4일에 아이가 태어났고, 5월 1일 지점장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패기와 용기가 있어서는 아니었지만 제가 지점장을 못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도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답니다.

 

지점장을 맡으신 후로도 하루하루가 행복하셨었나요?


반년 정도는 출근길에 울기도 여러 번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를 추천했던 분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분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지점장의 위상과 모양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갔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작았던 지점도 점점 커졌고요. 연도상에도 여러 차례 오를 수 있었습니다. 





▶ 어머니를 찾아갔던 지점에서 시작한 꿈


정용환 지점장님의 어린 시절을 한번 들어볼까요?


저는 어머니가 계시던 지점을 가끔 들렀는데요. 지점의 모든 풍경이 참 희한했어요. 사무실에 가득했던 화려한 현수막, 모두 제 어머니 같은 친절한 FP분들, 어려운 말이 잔뜩 쓰인 서류뭉치들 전부 어린 제 눈에 신기했었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벽에 붙은 길고 짧은 막대그래프가 제일 관심 가던 것이었는데요. 스스로 기억은 안 나지만 그 그래프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는 막대가 짧은 FP분들에게 외쳤다고 하네요. “OOO 아주머니, 분발하세요!” 라고요. 그때 FP분들이 피는 못 속인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고 합니다.

 

정용환 지점장님은 그때부터 지점장을 꿈꾸게 된 건가요?


그렇다기보다 어머니가 매일 열심히 준비하시는 교육자료를 유심히 보게 되면서 FP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고객에게는 미래를 약속하는 일에 대해 흥미를 느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고교 시절 쭉 학생회장으로 교우관계와 리더십을 인정받으며 체육교사를 꿈꿨죠. 전공도 예체능으로 정했었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학교가 아닌 보험회사, 지점으로 향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의 한화생명 채용설명회에서 영업관리직 공채에 대한 안내를 받았어요. 그 날로 어린 시절 보아왔던 어머니 모습을 자기소개서에 써 내려갔죠. 그렇게 2013년 한화생명에 입사하게 되었고, 2015년 4월 최연소 지점장이 되었습니다.


 

지연선 지점장님은 아드님의 영업관리직 채용을 말리지는 않으셨나요?


그 당시 주변에서도 안 말리냐고 물어보셨는데요. 아무래도 한 지점의 실적을 책임져야 하니 힘들 것은 뻔하니까요. 하지만 사실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어요. 어려서부터 걱정거리 한번 만들지 않은 아들이었으니 그 선택을 믿어보기로 했지요.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챙길 정도로 친화력이 좋았거든요. 그래서 만만치 않은 지점장도 잘 해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물론 그 기대를 밖으로 내보이지는 않았어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건 본인 압박감이 더 클 테니까요. 하지만 3개월 만에 덜컥 분기 실적 우수 지점장으로 본사 초대를 받았을 때는 아주 기쁘더라고요. 50명 동기 중 25명이 지점장이 되었는데 그중 첫 번째라는 이야기에 역시 아들 선택이 옳았구나 싶었습니다.




▶ 어머니의 노하우를 그대로!


정용환 지점장님은 지금도 어머니가 많은 도움을 주시나요?


제가 근무하는 신구리TFP지점은 전화영업에 특화된 지점인데요. 어머니께서 근무하시는 번동지점과 같은 현수막들이 걸려있어요. 대부분 여성인 FP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작은 선물 하나, 식사 메뉴까지도 어머니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게 되지요. 일상 교육 준비가 제대로 끝나지 않으면 절대로 퇴근하지 않는 철저함과 FP들이 비전과 목표를 갖고 도전하게 하는 동기 부여의 노하우도 어머니께 여전히 배우고 있고요. 어머니는 저에게 인생의 스승 같아요. 어머니도 응원해주시고, 저도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지만,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지점장의 고충은 정말 크더군요. 그동안 어머니께서 훌륭한 실적을 내셨던 것이 얼마나 큰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는지 새삼 실감합니다.

 

어머니의 가장 소중함 가르침이 있다면?


어머님은 언제나 “진심을 다하면 반드시 통한다”를 강조하고 계세요. 언제나 힘든 지점을 발령받아 정상궤도에 올려놓고, 다시 작은 지점으로 옮겨가 제대로 키워내는 어머님의 저력이 그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 역시 좋은 FP를 키워내는 일은 한 가정의 행복을 책임지는 일이라는 신념을 원칙으로 삼고 있지요. 그래서 분기 실적 우수 지점장이 되었을 때도 저의 성취감보다 전체 FP들의 소득 실적이 향상된 것이 훨씬 기뻤습니다. 





▶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이어진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연


어머니는 베테랑이라 바쁘고 아들은 처음이라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즐거운 수다를 좋아하는 모자지만 요즘 집에서 얼굴 볼 시간이 줄어든 것이 조금 아쉽다고 하네요. 대신 시시때때로 전화통화를 하며 크고 작은 고충을 함께 나누고 있다고 해요. 두 사람의 고민 끝에는 언제나 함께하는 FP가 있었습니다. FP가 행복해야 고객이 행복하고, 고객이 행복해야 한화생명이 커갈 수 있으니까요. 간혹 힘들고 쫓기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은 “그만큼 중요한 자리”라고 바꿔 생각한다는데요. 그것이 이들 모자가 오늘을 힘차게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더불어 불교문화에서는 부모 자식 간 인연이 전생에서부터 이어지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신비롭고 경이로운 인연이라는 것은 폭포수 같은 애정과 조건 없는 믿음으로 단단히 맺어져 있다고요. 현장의 이 두 사람에게는 전생을 넘어 현생에서도 또 다른 정겨운 인연의 끈이 더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글은 한화 한화인 10월호 ‘신인, 고수를 만나다’를 재구성 하였습니다.>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