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

갑작스러운 엄마와의 이별 이야기를 그린 <영화 속 보험이야기> 나의 어머니


동생은 어릴 때 엄마를 ‘어머니’라고 호칭 했습니다. 말도 제대로 잘 못하는 어린 아이가 꼬박꼬박 존칭을 쓰는데, 그게 그렇게 예뻐 보여서 부모님이 참 귀여워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한동안만 그랬고 이후엔 엄마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게 됐지요. 나이를 먹으면서 아들의 경우에는 어머니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지만, 딸들은 그래도 끝까지 엄마를 고수하는데요. 엄마라는 호칭이 아무래도 정서적 친밀감이 더 강하다보니, 부녀지간은 점점 친구처럼 편하게 관계를 맺어가는 것 같아요. <나의 어머니>는 바로 ‘어머니’가 아닌,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영화라고 하는 편이 맞겠네요. 미묘하지만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딸들의 입장이라면 잘 아실 거예요.


영화 속 딸은 영화감독으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마르게리타(마르게리타 부이)입니다. 내놓는 작품마다 예리한 시선으로 사회문제를 해부하는 감독으로 평단으로부터 호평 받는 감독이지요. 막 촬영 중인 작품 역시 노사갈등을 전면적으로 다루는 용감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바쁜 와중에 녀는 갑자기 쓰러지신 엄마 일로 마음 한편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촬영장에서는 하루 종일 녹초가 되어서도 일이 끝나면 바로 엄마가 계신 병원으로 직행하는 것이 일과입니다. 의사의 말로는 엄마의 증세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해석하자면 어느 때고 닥칠 그 마지막 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마르게리타는 이 상황을 아무래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촬영장에서는 병원 걱정, 병원에서는 촬영장 생각, 두 곳을 오가느라 혼란스러운 시간들이 지속되는데요. 결국 짜증이 늘고 주변과 불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 와중에 어린 딸은 하라는 라틴어 공부는 하지 않고 이혼한 남편과 스키장으로 놀러를 가서 엄마인 그녀의 속을 썩입니다. 사실 지금 그녀가 처한 혼란을 되짚어보자면, 꽤 오랫동안 그녀가 주변 사람들과 관계에 무심하고, 혼자 독단적인 방식을 고수해 온 데서 오는 결과이기도 한데요. 마가 아프면서 이렇게 그동안 방관해 왔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졌다고 해야 할까요. 골치 아픈 일들이 지속되면서 마르게리타는 악몽을 자주 꾸고 힘든 일도 겪는데요. 특히 그녀가 잠든 사이에 목욕탕 물이 넘쳐 온 집 안이 흥건해져 낭패를 겪게 됩니다. 자다 깬 그녀는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보려 하지만, 이미 혼자서는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지요. 신문지와 걸레를 동원해 바닥을 닦던 그녀가 오열하는 모습은 현재 녀가 겪고 있는 심적 고통이 얼마나 큰지 오롯이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마르게리타가 엄마의 집에서 엄마가 청구서를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 못해 애를 먹다 오열하는 장면도 있는데요. 늘 일에 치여 바쁘게 사는 동안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존재인 엄마에게는 무심했던 자신을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나의 어머니> 속 마르게리타가 겪는 상황들은 영화이기 때문에 극적으로 포장된 드라마틱한 이야기라기보다, 마치 우리의 이야기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만약 엄마가 입원해 있다고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본다면, 많은 장면에서 우리 역시 겪을 법한 일들이라 마음을 움직이는데요. 이렇게 영화 속 묘사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 난니 모레티 본인의 경험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011년 발표한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를 제작할 당시, 그의 어머니가 병중에 있었고 임종을 했다고 하는데요. 난니 모레티 감독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금기의 영역인 교황청 내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고 있었으니 심적인 고충이 극에 달했던 때라고 짐작이 됩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빠져 지내던 터라 아마도 다른 일은 모두 잊고 영화에 빠져 바쁘게 지냈지 싶은데요. 


수집한 기념우표를 모두 팔아 슈퍼 8mm 카메라를 구입해 고등학교 졸업 후 단편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감독의 길에 들어섰고 1994년에 영화 제작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낸 〈나의 즐거운 일기〉로 칸 국제 영화제 감독상을, 2001년에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가족의 고통을 그린 〈아들의 방〉으로 칸 국제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를 비판한 영화 <악어〉 이후 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난니 모레티 감독의 작품 성향으로 볼 때 〈나의 어머니〉는 자아와 가족 관계에 대한 문제를 그린 초창기 작품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들의 방>에서 자식의 죽음이 크나큰 인생의 비극으로 다가왔다면, <나의 어머니>에서 엄마의 죽음은 마냥 그 괴로움에 빠져 있어서만은 안 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받아들여야 할 하나의 통과 과정이라는 점이 차이점이 보인다고 할까요. 엄마가 입원해 있는 동안 그래서 딸은 자신의 일인 영화 찍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내내 혼란스러워하던 마르게리타가 엄마의 임종 앞에서 오히려 담담하게 그 아픔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요. 이렇게 영화가 뜨겁지만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마르게리타가 엄마를 ‘내 엄마'에 국한시키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라틴 어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였던 엄마의 책들을 보고 난 뒤, 그녀는 촬영장에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그 책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 오랜 노력들은 어디로 갈까요?”라고 말하며 목이 멥니다. 엄마의 죽음은 결국 ‘나의' 엄마이지만, 제자들과 관계를 가졌던 한 사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사건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렇게 마르게리타가 아파하는 순간, 엄마가 아닌 마르게리타와 함께 삶을 살아갔던 한 여인이 느껴졌습니다.


난니 모레티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작품에 직접 출연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이번 작품에서도 마르게리타의 오빠 역할로 출연합니다. 왜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마르게리타를 자신과 같은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설정했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오빠의 행동들을 보면 조금쯤 그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는 현장에서 촬영하느라 바쁜 동생 대신 엄마의 병간호를 전적으로 도맡아 하는데요. 촬영장과 병원을 오가며 주변 사람들과 불화를 겪고, 엄마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힘들어 하는 마르게리타가 과거 난니 모레티 자신이라면, 일을 그만두고 간호에 전념하는 오빠는 그때의 속죄를 하는, 또 다른 선택적 자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난니 모레티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엄마와의 이별의식을 영화적으로 치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엄마는 돌아가셨지만 마르게리타는 앞으로도 자신의 일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또 다른 일상, 내일을 살아가겠지요. <나의 어머니>가 전하는 잔잔한 파고로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되 주리라 믿습니다.


   


   

  다른 글 더보기


  ▶과소비 때문에 곤란해진 무민 가족 <영화 속 보험 이야기> 무민 더 무비 <바로가기>

  ▶영화기자가 들려주는 영화 속 보험이야기 <극비수사> <바로가기>

  ▶영화기자가 들려주는 영화 속 보험 이야기 <위아영> <바로가기>







이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