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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한 미국, 그 이유와 여파는?

공군 수송기에 수백 명이 몰려들어 비행기가 떠나지 못하였고 심지어 달리는 비행기에 사람들이 매달려 탈출하다 추락하였습니다. 20년 만에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발표와 맞물려 탈레반이 빠르게 아프간을 점령하자 이에 탈출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포착된 현장이었는데요, 미군이 철수하면서 아프간과 관련된 국가들은 여러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20년 만에 종결된 아프간 사태와 영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9.11 테러로 시작한 전쟁


2001년 9월 11일 충격적인 알카에다의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그 당시 미국은 엄청난 분노를 보였고 반미국가들마저도 숨죽였을 정도입니다. 미국은 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를 찾는 데 혈안이 되었고 이들을 보호해주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타겟으로 정합니다. 그 유명한 『테러와의 전쟁』 슬로건 아래 미국과 동맹국들이 모였고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과 함께 10월 7일 전쟁을 개시합니다.

 

 

▶ 늪으로 가는 전쟁


미국, 아프가니스탄 이름값만 들어도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일 것이라 쉽게 예측 가능했듯이, 전쟁 개시 후 미국은 파죽지세로 전쟁을 이끌어 갑니다. 미국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주요거점을 폭격하였고 이에 북부동맹도 공세를 가하며, 한 달 만에 수도 카불은 함락되었고 2개월 만에 미국은 승리선언을 합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초기 목표인 오사마 빈라덴을 잡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래도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 세력은 큰 피해를 보았고 UN 등의 지원으로 과도 정부가 출범하게 되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미국 정부의 최대 실책 중 하나로 뽑히는 이라크 전쟁에 미국이 몰두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 마무리는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주요전력과 병력이 이라크 공격에 초점을 맞추면서 아프가니스탄 내 미국 전력은 약화되었고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탈레반 세력이 힘을 키우게 됩니다. 이 와중에 세워졌던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을 제대로 통치하지 못하면서 탈레반의 전력은 급속도로 회복됩니다. 

이 시기 이라크 전쟁 또한 아프가니스탄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이라크 후세인 정부를 단 2주 만에 무너트렸지만, 병력의 절대적 부족, 이라크 통치체계 붕괴 등으로 막대한 저항세력이 일어납니다. 게릴라, 폭탄테러, 종교분쟁(수니파, 시아파) 등 미국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며 깔끔하게 끝날 것 같았던 이라크 전쟁 또한 수령으로 빠지게 됩니다. 

이라크의 상황처럼 아프가니스탄도 탈레반의 저항도 지속되었습니다. 이 시기 미국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야기된 금융위기를 맞으며 두 개의 전선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버거워졌습니다. 미국 또한 전선을 철수하고 싶은 상황이지만 명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였고 그의 공약 중 하나가 이라크 철수였습니다. 이후 점진적으로 이라크에서 철수하며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탈레반 소탕에 집중하기로 하였습니다.

 

 

▶ 빈라덴 사살과 철수하려는 미국

 

아프가니스탄에 집중하던 미국이었지만, 이미 탈레반은 전력을 완전히 회복하며 강렬히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을 도와주는 아프간 정부군은 사실상 도움이 안 되는 전력이었으며 미국의 피해도 누적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추가로 미국은 여전히 금융위기의 상처, 여론 악화 등을 마주하고 있었기에 명분만 있다면 아프간을 철수하고 싶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2011년 5월 ‘제로니모’ 작전으로 불리는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이 성공합니다. 여담으로 제로니모 작전 당시 촬영된 사진은 대통령이 옆으로 빠져있는 것으로 큰 주목을 받았으며, 해당 사진에는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당시 부통령) 및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도 같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쟁 초기 명분 중 하나가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 사살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미군은 철수할 명분을 어느 정도 얻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대로 철수하기엔 아프간 정부가 무력한 상황이었기에 한시적으로 더 주둔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후 트럼프 정부에서도 철수냐 주둔이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다 2020년 미국과 탈레반이 평화협정을 맺으며 완전철수에 합의하게 됩니다.

 

 

▶ 숫자로 보는 아프간 전쟁

 

20년간 이어진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비용뿐만 아니라 많은 희생자까지 낳았습니다.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재건하려고 했던 미국이지만 이 같은 노력은 미군이 최종철수를 시작하자마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허울뿐인 아프간 정부군은 저항조차 제대로 못 한 채 1달 만에 수도 카불을 내주며 항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프간의 전설적인 영웅 샤 마수드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가 국민 저항 전선을 조직하며 판지사르 지역에서 저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판지사르 지역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정복하지 못한 요새로 저항은 생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 아프가니스탄 완전 철수 여파

 

전격 철수를 단행한 바이든 대통령이지만, 미국 내 여론은 좋지 않습니다. 전쟁에 대한 피로도로 철수에 대한 찬성여론이 더 높았지만 전격 철수 과정 중 미국 인력들이 탈레반에게 쫓겨 급하게 철수하는 모습, 초반부에 언급한 카불공항의 아수라장 등의 장면이 미국민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전쟁 철수 트라우마가 미국민들에게 상기되었고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여론 악화로 이어졌습니다.

 


이 같은 지지율 하락은 공화당에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 이후 침체를 겪고 있던 공화당은 아프가니스탄 철수 여론악화를 반등기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바이든 정부의 인프라 예산과 미국 연방정부 부채한도 협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부채한도 유예기간은 7월 말로 공식 종료되어 현재는 재무부의 보유현금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공화당과 민주당의 협상 줄다리기가 이어지면 최악에는 10월~11월 디폴트 상태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탈레반이 집권할 아프가니스탄은 혼란이 지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 탈레반 세력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며 내전 가능성, 인권탄압, 주변국 들과의 분쟁 등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또한, 탈레반과 중국과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정립될지 국제사회의 시선이 모이고 있습니다. 탈레반 정부는 반미국을 표방할 것이며, 아프가니스탄의 지리적 입지를 고려한다면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교두보로 해당 지역에 중국의 영향력을 증가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프가니스탄 자체가 약소국이고 전통적인 미국 동맹관계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므로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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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