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상 남에게 본인의 성명 또는 상호를 사용할 것을 허락하는 계약을 ‘명의 대여 계약’이라고 합니다. 이 계약은 자칫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보이지만, ‘빚보증’만큼 무서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대수롭지 않게 명의를 빌려줘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하는데요. 명의를 함부로 빌려주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명의대여로 인한 피해는 빌려준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
명의를 함부로 빌려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명의대여의 심각성을 잘 알지 못하면 다음과 같은 피해를 보게 됩니다. 명의대여로 인한 피해는 명의를 빌린 사람이 아니라 빌려준 사람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오기 때문이죠.
실제로, 고장미(32세, 가명) 씨는 세무서에서 1억 2,000만 원의 세금고지서를 받고 망연자실했습니다. 알아보니, 몇 년 전 사귄 남자친구의 부탁으로 명의를 빌려줬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당시 남자친구는 신용불량자라서 사업을 하기 위해 김 씨의 명의를 빌려 달라 부탁했고, 김 씨는 매월 소정의 대가를 받는 조건으로 허락한 것이죠. 그러나, 사업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폐업 절차를 밟게 됨과 함께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세금폭탄 고지서는 그때 일로 날아왔던 것입니다.
김 씨는 세무서를 찾아가 자신은 명의만 빌려준 것이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5천만 원의 적금이 압류되어 체납세액으로 충당됐고, 금융기관에 체납 사실이 통보되어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명의 대여자가 실사업자가 아니라면 명의 대여자가 종합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의 세금부담을 하게 되고, 법인이 체납한 세금은 명의를 빌려준 주주가 대신 부담해야 합니다. 또한, 실사업자가 세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하면 명의 대여자의 예금, 부동산 등 재산이 압류, 공매되어 체납세금을 충당하게 될 수도 있고, 체납 사실이 금융기관에 통보되면 신용카드사용정지는 물론 심각할 경우 출국 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합니다.
▶명의대여로 재산까지 압류될 수 있다
사업자등록에 대한 명의를 함부로 빌려주었다가 각종 세금 및 건강보험료 등 세금 추징은 물론, 재산압류, 또는 징역이나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업자등록이 명의 대여자 이름으로 등록되면 사업과 관련한 제반 사항과 거래가 모두 명의대여자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만약 명의를 빌려 간 사람이 체납하거나 세금 신고를 하지 않으면,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명의 대여자의 재산을 압류할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세법에서는 ‘실질과세의 원칙’이라고 하여, 단순히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업자가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고 있지만, 문제는 단순 명의만 빌려주었다는 것을 납세자가 입증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입니다. 과세관청으로서는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세무서를 방문하고, 사업용 통장 개설을 하려면 적극적으로 협조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단순’ 명의대여로 인정받기가 현실적으로 더욱더 어렵습니다.
게다가 건강보험료 문제도 발생합니다.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는 소득과 재산 등을 기준으로 부과하므로 명의를 빌려주면 실제로 명의 대여자가 소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명의대여를 해준 사업으로 인한 소득이 발생하여 건강보험료가 상승할 수 있습니다.
▶탈세 목적의 명의대여는 형사처벌 대상
조세범 처벌법 제11조에 의하면 타인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하거나, 사업을 영위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 타인이 사업자등록을 하도록 허락한 사람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감시 체계를 활용하여, 탈세 목적의 명의대여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포상금’ 제도를 운영 중인데요. 지난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제도로 10년째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탈세 제보 신고보다 현저히 낮은 신고 건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 포상금의 액수는 신고 건당 100만 원입니다. 배우자나 부모, 자녀 명의로 사업하는 행위도 신고 대상에 포함되는데요. 포상금 지급 대상은 탈세 제보(최고 1억 원 한도), 은닉재산 신고(최고 1억 원 한도),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발급 거부 신고(연간 200만 원 한도) 등이 있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명의 대여 행위는 최악의 경우 재산도 잃고 사람도 잃을 수 있습니다. 소중한 권리이자 꼭 지켜야 할 본인의 명의, 신중하게 생각하더라도 훗날 본인에게 해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 잊으면 안 되겠죠? 사업상 명의대여는 빚보증 서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정원준